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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로부터

2014.7 집 나간 조르바를 기다리며...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교하도서관의 '집나간 조르바'는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일까?

 

 

최근에 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에서 인간과 유인원이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하는 말이 있다 “Trust ”

도서관에서도 이용자와 운영자간에, 이용자와 이용자간에 신뢰가 형성되면, 규범과 틀을 벗어나 상상했던 많은 것들을 훨씬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성탈출> 이미지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2&aid=0000038158

 

도서관에서 ‘도서’는 도서관의 자산에 해당한다. 예산과목에서 ‘자산취득비’로 상정되어 구입에서 폐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물품과 같이 취급된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에는 도서관 감사 때마다 등록대장에는 있으나, 실물이 확인되지 않는 분실도서나 미납도서에 따르는 책임을 직원이 감당하기도 했다. 이런 탓인지 도서관 직원들에게 도서 분실에 대한 두려움, 그로 인한 책임은 늘 암묵적 압박이 되고 있다. 이 지점이 이용자와 운영자가 갈리는 지점이다. 이용자들은 휴게공간에 읽을 만한 책을 두어 차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요구를 대하는 직원들의 반응은 - 그러면 책은 누가 관리하나? 책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분실방지시스템을 설치해야 하나? 등등의 문제로 커지면서 결국은 ‘하지말자’에 이르고..그래서 대부분 차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 있는 책들은 기증도서 중에서 등록되지 않은 책, 설사 잃어버린다 해도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는 책을 놓게 된다. 결국 그 곳은 서가는 있되, 읽을 만한 책이 채워지지 않는 방치된 공간으로 누추해진다.

 

그런데, 교하도서관 브라우징룸 (책 더하기)에서는 아주 가치 있는 책, 읽을 만한 책, 출판사나 지역의 명사가 엄선한 책을 - 감히 분실방지장치도 되어 있지 않고 담당직원도 없는 곳에 - 비치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 도서관의 자산으로 등록되었거나, 출판사로부터 대여한 책들로 분실되었을 경우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하는 책들이다. 올 2월부터 3층 브라우징룸의 서가들은 그렇게 채워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도서관에서 상상했던 -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서 책을 보는 북카페의 풍경을 만들어가려고 했다. 때로는 독자와 출판사 대표가 만나고, 때로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그렇게 테이블 둘레에 앉아 책을 보거나 저녁노을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 교하도서관 3층 브라우징룸

 

기이하게도(?) 우려했던 도서 분실 건은 아직 없다. 다만, 사라진 책들,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책들이 있을 뿐이다. 열화당 출판사의 책들을 전시했던 지난 5월, 도서관에 없었던 책 중 일부를 대여하여 전시한 적이 있었다. 전시기간이 끝나고 출판사에 반납하려고 목록을 챙기던 중 책 한 권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출판사 측에 사정을 얘기하고 돌아오면 반납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 책이 한 달만에 나타났다. 출판사와 우리 도서관 모두 기다렸는데 예상 했던 대로 다시 돌아와 줬다. 그 후에도 종종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 사라졌다가 어느 날 서가 한 켠으로 돌아오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와우~! 우리 수준이 이 정도야~~^^"라며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순간의 흐뭇함을 느낀다. 그동안 브라우징룸에는 매달 200여권의 책이 6개월동안 1,000여권 전시되었다. 그리고 매달 6-7권 정도가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유일하게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책, 한 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는 집 나간 조르바라고 불리운다. 언젠가 돌아올 조르바를 우리 도서관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도서관이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고 만들어 가고 있는 그 신뢰(Trust)를 믿기 때문에...

 

* 열화당에서 사라진 책은 ‘서대문 형무소’였답니다.


서대문 형무소

저자
리영희, 나명순 지음
출판사
열화당 | 2008-01-0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사진기록. 이 책은 서대문 형무소의 내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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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7 교하도서관장 윤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