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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

내 인생의 황혼을 바꾼 도서관


지난 주말 파주 평생학습 박람회에서 개최된 '도서관 정책콘서트'에서 감동적인 수기 발표가 있었습니다.


교하도서관에서 어르신 책읽어주기 자원봉사 동아리 책마중 활동을 하고 계시는 안정옥 어르신께서 도서관이 당신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나는 서쪽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마치 내 인생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삶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 인생이지만 그 어떤 의무감 같은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이젠 삶의 끝자락에 와서 자신을 돌아다보니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회의가 오더군요. 흔히들 나이가 많아서 그리고 다 늙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자신을 체념으로 덮어버리고 살다가, 삶을 마감할 시간을 기다리는 그런 노인들의 일상이 아니라, 하루를 보낸 해가 한쪽 하늘이나마 곱게 물들이는 그런 열정으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봅니다. 시간밖에 없는 무료한 노인의 일상을 떨치고 생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곳이 도서관이었습니다. 그동안 하던 일을 접고 일 년 가까이 무료하고 지루한 날들 속에서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책만 읽다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면서 쓸모없이 늙어버린 내 자신이 너무도 허무한 생각에 자칫 우울증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그러던 중에 책 읽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는다는 교하도서관의 광고를 보고 용기를 내서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기웃거리면서 체념으로 자고 있던 저의 머릿속을 하나씩 깨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는 교육을 받고, 컴퓨터 교육도 받으면서 즐거운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글 쓰는 프로그램이 홍보되어 있는 것을 보니 또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글 쓰는 강의까지 들으면서 지금은 잘하면 연말쯤은 시집을 낼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시간을 주체 못하던 내가 지금은 시간에 쫒기고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인생은 늦게나마 ‘질’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만하지 않겠어요? 또 도서관에서 만난 지인의 안내를 받아 구연동화 교육을 수료하고 지금은 일주일에 어린이집 두 곳을 다니면서 반짝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손 유희와 노래를 하면서 구연동화를 하고 또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과 놀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는 어떤 행복한 세계에 들어와 있었지요, 어린이들 아에서 동극도 했지요,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할 수도 없고 새로운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동요를 입에 달고 살기도 하지요, 구연동화 원고를 외우기 위해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신통할 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한 곳도 못 불렀던 소심하고 한심했던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연동화를 하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도서관 소극장 무대를 누비면서 동극까지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요? 그리고 독서 토론회에 참석하는 영광도 얻어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아이들 교육에 관한 토론도 하고 세상 사는 어려운 문제들도 얘기하다 보면 마치 내가 젊어진 착각마저 하게 됩니다. 주제도 모르고 열띤 토론을 하다보면 ‘내가 왜 이래’하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자책도 느껴지지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두 나도 모르게 도서관이 만들어준 자신감이라 생각하면서 도서관에 감사합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든다고 했던가요? 삶의 보람과 행복,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삶의 끝자락이면 어떻고, 마지막 날이면 어떻습니까? 나이를 느낄 여유도 없이 이렇게 즐겁고 바쁘게 살다가 삶이 끝난다면 더없이 행복한 끝남이 아닐까요?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도서관이야 말로 내 인생의 황혼을 바꿔 놓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도서관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안 정 옥(교하도서관 어르신 책읽어주기 자원봉사 동아리 '책마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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