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후기

[북데이트X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2)

 

사서 이세 히데코 책이 천개의바람 출판사에서 7권이나 나왔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서요?

 

최진  조금 전에 『첫 번째 질문』에서 마음에 드는 질문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제가 좀 더 덧붙이자면, 『첫 번째 질문』은 제가 도서관 강연이나 책 모임에 갔을 때 가장 많이 얘기하는 책 중에 하나예요. 왜냐면 참여하시는 분들의 참여를 굉장히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이거든요. 이 책을 다 같이 읽고 나서 인상적인 질문을 하나 고르고 그 질문이 인상적인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자기 속 이야기를 쉽게 꺼내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대개 ‘이런 대목이 나한테 와닿는다, 중요하다’ 이야기하고, 그러고 나서 제가 ‘그럼 당신한테 소중한 사람에게는 어떤 질문을 주고 싶으냐’ 물으면 ‘자녀나 남편, 또는 부모님한테 이 질문을 선물해주고 싶다’라거나 ‘평생을 살면서, 몇십 년을 살아오면서 왜 이런 질문을 가까운 이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한번도 안 해봤을까?’ 돌아보게 됐다고 이야기하시곤 해요. 예를 들어, 가족한테 ‘오늘 하늘 어땠어?’ 물어본다거나, 가까운 사람과 길 가다가 ‘저 나무가 뭔지 알아?’ 물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앞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에요.

근데 최근에 처음으로 어떤 분이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하고는 굉장히 다른 반응을 보이셨어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아마도 책과 가까운, 말하자면 책을 읽고 뭔가를 느끼는 훈련이 돼 있는 독자일 텐데요. 최근에 만난 그분은 책은 1년에 한두 권 읽을까 말까에, 일반 책과 그림책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별하지 못하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분에게 이 책을 읽어드렸더니 그러더라구요. ’네가 뭔데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지? 이건 실례야.’ 저한테 가 아니라, 책한테 정말 불쾌한 기분이 들었대요. 그 얘기를 듣고 그분과 이야기를 한참 나눠 보니, 이 책이 던지는 질문 자체가 그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한테 속마음을 조금도 내비치기 싫을 정도로 약해져 있다고, 그러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든, 아니면 가까운 사람하고든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결국 그분한테 책을 팔았어요. (웃음) 참고로, 제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책을 파는 걸로 결론이 나요. (웃음)

이세 히데코 작가 책이 저희 출판사에서 7권 나왔는데요. 제가 처음 만난 이세 히데코 책은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예요. 출판사 창업을 하고 2년째 되던 해에 서울도서전에 외국 출판사 미팅을 하러 갔어요. 명함을 내밀면서 ‘천개의바람 출판사입니다.’ 하고 소개를 했죠. 그때 만난 일본 출판 담당자가 한국말을 아주 잘하지는 못하고 적당히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제가 출판사 이름을 말하면서 아까 소개한 대로, ‘여기서 바람은 ‘wind’가 아니고 ‘hope’입니다.’라고 했는데도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한국말 ‘바람’만 이해한 거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대뜸 ‘이세 상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했어요. 제가 그분한테 대고 ‘아뇨, 이세 상이 누구예요?’라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냥 ‘아, 예. 좋아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날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이세 상’, 그러니까 일본 담당자가 말한 ‘이세 히데코’라는 사람의 책을 찾아봤더니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라는 책이 있는 거예요. 제가 만난 일본 출판 담당자는 아마 제가 ‘천개의바람’이라고 출판사 이름을 지을 때 이 책을 참고했을 거라고 미루어짐작한 모양이에요.

* 1000명의 첼리스트 공연 https://www.youtube.com/watch?v=YGMvFyKJGUU

 

나중에 알고 보니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라는 책은 일본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그림책으로 굉장히 유명했어요. 제가 이 책을 처음 검색했을 때 찾은 동영상이 있는데요. 깜깜한 무대 위에서 열 명 정도의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로 이 책을 한 대목씩 돌아가면서 읽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림노래하듯이 그냥 책을 돌아가면서 읽기만 하는 거예요. 그러는 동안 스포트라이트가 배우를 비추듯이 책 읽는 사람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비춰주고요. 무대 아래쪽에는 아마도 무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이 앉아서 무대 위에서 책 읽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고 응원해줬어요. 어쭙잖은 일본어 실력에 구글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동영상 내용을 어찌어찌 해석해보니까, 지하철 살인가스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모임 사람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려고 함께 그림책을 읽는 자리였던 거예요. 외국 드라마 보면 알코올 중독자 모임, 동성애자 부모들의 모임 등등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얘기함으로써 치유를 받으려는 활동이 소개되곤 하는데, 이 그림책이 그런 치유의 매개가 되는 책이었어요. 그 동영상을 먼저 접한 뒤로 책을 구해서 보니까 그림도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간을 했어요. 그전까지는 이세 히데코라는 작가를 전혀 몰랐고요.

   

 제가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라는 책을 내기 전에 이미 이세 히데코의 책 중에서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든지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같은, 지금 다시 봐도 좋은 책들이 이미 번역돼서 나와 있었어요. 근데 판권을 알아보니까, 앞서 이세 히데코의 책을 낸 출판사들에서 후속작은 계약을 안 한 상태였어요. 책이 잘 안 팔렸기 때문이죠. 책이 잘 팔렸으면 당연히 후속작도 계약을 했을 텐데요. 그 덕분에 판권 경쟁 없이 제가 이세 히데코의 책들을 내게 되었고요. 내고 봤더니 이 책의 제목이랑 저희 출판사 이름을 연결해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 책 덕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같은 작가의 책을 계속 내게 됐죠. 사실 제가 보기에도 이세 히데코의 후속작들이 다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았어요. 『첫 번째 질문』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했던 책이고, 『나무의 아기들』은 주로 흑백 장면인데 중간에 컬러가 두 장면만 있어서 제작비는 컬러 그림책이랑 똑같이 들지만 값은 비싸게 매길 수 없어서 돈이 안 남을 것 같았어요. (웃음) 책은 잘 팔릴지, 수익은 낼 수 있을지 계속 의심을 해 가면서도 한 작가의 책을 꾸준히 냈더니, 지금은 저희 출판사가 이세 히데코의 신작을 우선적으로 고를 권한을 가지게 됐어요. 앞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세 히데코가 글과 그림을 같이 한 책은 반드시 내고, 그림만 그린 책은 출간을 조금 고려해보자는 정도로 기준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규모의 작은 출판사에서 한 작가의 책을 많이 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권수로는 7권이 많지 않지만, 전체 출간 종수 대비 비율로 따져 보면 저희 출판사 책의 10퍼센트가 한 작가의 책인 거예요. 그렇지만 이세 히데코 작가는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라서, 특별한 예외로 두고 앞으로도 계속 새 책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박수)

 

사서   응원의 박수인가요. (웃음) 작년에는 대표님이 직접 이세 히데코 작가를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최진  작년에 제가 작가를 인터뷰하러 갔어요. ‘아침독서신문’이라는 매체에서 이세 히데코 특집 지면을 기획하면서, 제가 직접 작가 인터뷰를 해오면 싣겠다고 했어요. 때마침 일본 나가노 현에 있는 ’모리노우치’라는 그림책 미술관에서 『아이는 웃는다』 출간 기념 원화 전시가 열리는 시기랑 맞물려서 작가님이 미술관에 오시기로 돼 있어서 겸사겸사 만나러 간 거죠. 전시회장에 가서 강의도 듣고 인터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왔어요.

인터뷰하러 갈 때만 해도 작가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이렇게 많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근데 오히려 제가 뜻밖의 경험을 얻고 돌아왔어요. 모리노우치라는 미술관이 대중교통도 잘 닿지 않는 숲 속에 있어요. 도쿄에서 네다섯 시간 가야 하는 외진 곳이고요. 그런데도 작가님 원화를 직접 보고 강연회를 들으러 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왔더라구요. 거기 온 사람 중에는 앞을 보지 못해서 안내견이랑 같이 온 사람도 있었고,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고, 듣지 못해서 수화로 대화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말하자면, ‘아, 저런 사람들도 그림책을 즐길 수 있나?’ 의아한 정도의 사람들이 그 산골짜기까지 그림책 강의를 듣고 그림책 원화전을 보러 왔다는 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림책을 향한 충만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죠. 언젠가 우리나라도 저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전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웃음) 앞으로 저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돌아왔죠. 그 후로 작가님한테는 팬레터 쓰듯이 이메일도 보내고, 한국에서도 원화 전시회를 열어주십사 제안도 드리고 있어요.

* 이세 히데코를 주제로 한 다큐 영화 <생명의 모습>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gDlz6EhD1Iw 

* [작가/저자] 어느 숲속 미술관에서 만난 시 그림 이야기 -이세 히데코의 미야자와 겐지 그림책 원화전 풍경

  (학교도서관저널. 2016년 6월호)  

http://www.slj.co.kr/bbs/board.php?bo_table=people&wr_id=433&sca=%C0%DB%B0%A1%2F%C0%FA%C0%DA 

 

사서  ’전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이라는 대목에 격하게 공감이 되네요. (웃음) 도서관에 안 오시는 분들을 도서관에 오시게 하는 것도 전도 수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최진  저희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에요. 어머니가 엄청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는데, 그런데도 남편 하나 자식 하나도 전도를 못 했으니 지옥불에 떨어질 거라고 하세요. (웃음) 제가 겪어보니, 책을, 더군다나 그림책을 누군가가 좋아하게 만든다는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리고 전도라는 게, 흔히 전도를 한 사람 덕에 누군가 교회에 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냥 그 사람이 교회에 갈 때가 돼서 간 겁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죽기 살기로 전도를 해도 발도 들이고 싶지 않던 교회를 어느 날 갑자기 제 발로 찾아가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오거든요. 그림책도 누가 옆에서 아무리 좋다고, 꼭 읽어보라고 해도 거들떠도 안 보다가, ‘아, 그림책이 이런 거구나’ 스스로 느끼는 날이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 [북데이트X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3)으로 이어집니다.

* *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