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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1)

 

2017 교하도서관 문화가 있는 날_북데이트 with 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일시 : 2017년 4월 26일 (수) 10:30~12:00

소 : 파주 교하도서관 3층 브라우징룸

초대: ‘천개의바람’ 출판사 최진 대표

사회: 교하도서관 전은지 사서

 

 

전은지(이하 사서) 안녕하세요. 저는 교하도서관의 전은지 사서입니다.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 두 번째 시간에는 어린이책 출판사 ‘천개의바람’을 모셨습니다. 2012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90종의 책을 낸 작은 출판사, 천개의바람 최진 대표님과 오늘 시간 함께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최진 안녕하세요. 천개의바람 출판사 대표 최진입니다. 제가 앞에 나서서 뭔가를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눌 만한 주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희 책을 가지고 독자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많이 물어봐주세요.

 

 

사서 네, 오늘은 천개의바람 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 『첫번째 질문』과 『아이는 웃는다』에 대해 이야기 나눌 텐데요. 둘 다 오사다 히로시 시인의 시에 이세 히데코 작가가 그림을 그렸어요. 먼저, 오사다 히로시 시인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진 그전에 먼저, 천개의바람 출판사 이름의 의미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요, 잠깐 소개할게요. 출판사 이름을 ‘천개의바람’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여기서 ‘바람’은 ‘wind’가 아니고 ‘hope’입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원래 저는 중의적인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바람’이거든요. 바람을 담을 수도 있고,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바람’을 붙여서 이름을 지으려고 보니, 그 앞에 뭔가 숫자를 붙여야 될 것 같더라고요. 근데 ‘하나의 바람’은 너무나 절박해 보이고, ‘백 개의 바람’은 발음이 안 좋고, ‘만 개의 바람’은 너무 정신이 없고. 그래서 일단 ‘천 개의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그러고 나서 뜻을 붙이려고 봤더니, ‘천’이라는 게 뭔가가 완성되는 데 필요한 숫자더라구요. 천 일 동안 기도를 하면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 뜻을 담아서, ‘천 가지의 바람을 담은 책을 천 권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출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책에 한 가지 바람을 담으면 되죠. 한 권만 읽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책 이 아니라, 가령 저희가 만든 책 한 권을 읽으면 그전까지 별로 관심 없던 떡이 좋아진다거나, 또다른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덜 힘들어진다거나, 같은 소소한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그런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사다 히로시라는 일본 시인은 작고하셨는데, 우리나라 작가로 말하자면 고은 시인 같은 분이에요. 교과서에 시도 많이 실렸고, 삶을 관조하고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 일생 동안 천착했던 시인이고요. 오사다 히로시와 이세 히데코라는 화가가 만나서 만들어낸 시 그림책이 『첫 번쨰 질문』하고 『아이는 웃는다』입니다.

 

 osada hiroshi poe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서 두 작가님은 어떻게 만나셨을까요. 두 권이나 작품을 같이 하게 됐는데요.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있었을 것 같아요.

 

최진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됐느냐, 간단합니다. 출판사에서 발주를 했겠죠. (웃음) 출판사에서 오사다 히로시 시인의 시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편집자가 있었고, 그 편집자가 생각했을 때 그 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을 구현해낼 화가가 이세 히데코라고 생각을 해서 『첫 번쨰 질문』이라는 책이 만들어졌어요. 『아이는 웃는다』는 『첫 번째 질문』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만족스러웠던 두 거장,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작가가, ‘우리 그럼 두 번째 책도 함께해보자’ 하고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책이에요. 그림책을 위해 시인과 화가가 좋아하는 시를 함께 골랐고요. 그러니까 『아이는 웃는다』가 『첫 번째 질문』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작가들의 자발적인 동기로 만들어진 책이에요. 그래서일까요, 두 책을 다 읽었다면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첫 번째 질문』이 더 쉬워요. 교과서에 실려서 일본 사람들이 오래도록 읽은 시여서 좀 더 폭넓은 이해와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도 좋았겠죠. 반면에 『아이는 웃는다』는 읽는 개개인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이해의 편차가 큰, 좀 더 난이도가 높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웃는다』가 나오기 전에 오사다 히로시 시인은 돌아가셨어요. 이세 히데코가 그림을 그리면서 궁금한 점이 있어도 시인이 돌아가셨으니 물어볼 수가 없게 되었죠. 제가 작년에 이세 히데코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는 웃는다』를 그릴 때 어느어느 대목은 의미가 궁금한데도 시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까, 시 전문을 벽에 붙여놓고 시인의 마음이 이해될 때까지 천 번 넘게 읽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림책이 『아이는 웃는다』입니다.

   

사서  『아이는 웃는다』가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읽힐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시는 시인이 오사다 히로시가 아내와 사별한 후에 썼다고 알려져 있더라구요. 그리고 이 시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시인이 돌아가셨고요. 시인과 화가가 함께 책을 만드는 건 어찌 보면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잖아요. 그런 교감을 나눈 분이 돌아가셨을 때 이세 히데코 화가에게 또 이 시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갔을 것 같아요.

 

최진 일본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거나 대하는 자세는 우리나라 사람들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죽음은 굉장히 가깝고 흔한 일인 거예요. 지진 같은 자연재해만 해도 훨씬 잦고 해서, 가까운 사람들이 돌연 죽는 경험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이세 히데코도 그렇고 오사다 히로시도 그렇고,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걸 경험했고, 그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이 이 책에도 담겨 있죠.

『아이는 웃는다』를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하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거든요. 편집을 다 마무리하고 인쇄가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이 책 속에서 아이의 웃음에 담긴 인생의 의미는 뭘까?’ 스스로 물어봐도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근데 책이 완성돼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열흘 정도 기간에, 한 15년 저랑 같이 산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친구를 갑자기 보내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는데, 그전까지 좀 막막했던 문장 하나하나가 몹시 이해가 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가슴에 팍팍 꽂히는 거예요. 특히 맨 마지막 문장, “그래도 인생은 웃을 만하지 않은가”에서, ‘아 그렇구나, 삶이라는 게 슬픔하고 기쁨을 분리할 수 없고, 기쁨만 가질 수도 없고, 슬픔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기쁨 속에서도 슬플 수 있구나.’ 했어요. 그걸 지금 사십 대를 훌쩍 넘기고서야 처음 깨달은 거죠. 사실 반려견을 떠나보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작년에도 스무살 된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갔어요. 오래 같이 살아서 그야말로 가족 같은 반려견이였는데, 그 과정에서는 헤어지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말하자면 생명이 빠져나가는 걸 지켜봤거든요. 그래서 진짜 헤어질 때쯤에는 ‘하늘나라 잘 가서 행복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요. 이번 친구는 너무 갑작스럽게 떠난 거예요. 세상의 모든 이별이 준비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갑작스러운 이별도 너무 많죠. 제 경우에는 반려견과의 이별이었지만, 그 대상이 부모님이 됐든 형제자매, 친구가 됐든, 각오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별을 겪은 이들이 『아이는 웃는다』를 읽는다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 이게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이 책을 내는 데 조금 더 용기가 났어요.

『아이는 웃는다』 표지 뒷날개에 실은 「옮긴이의 말」을 읽으셨다면 이미 아는 이야기일 텐데요. 번역하신 황진희 선생님이 이 책을 번역하는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아픔 뒤에야 ‘아, 이 문장이 이런 뜻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누구든 슬픔을 되도록 안 겪기를 바라지만 만약 부득이하게 슬픔을 겪은 분들에게는 이 책이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의 순기능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힘들 때 힘이 되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첫 번째 질문』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는 웃는다』도 제 몫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서  사실은 저도 처음 이 책을 읽고는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시가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달까요. 근데 그 단순함이 어찌 보면 삶의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게 아닐까 싶어요. 『아이는 웃는다』와 『첫 번째 질문』을 여러 번 읽다 보니, 확실히 처음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 질문』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일본의 국민 시’라는 점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 속에서 자꾸 책 속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읽을 때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르게 떠오르고요,

아까 여러분꼐 「첫 번째 질문」 시 전문을 프린트해서 다 나눠드렸는데요, 읽으셨나요? 『첫 번째 질문』에서, ‘아, 이 대목은 나한테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마다 어떤 질문이 맘에 드시는지,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청중1  저는 이 문장이 좋았어요. “잘 나이 들어 갈 수 있을까요?” 제가 이제 마흔이 됐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 스스로 마녀 엄마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이 질문을 보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잘 나이 든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서  그렇죠. 멋진 할머니, 좋은 엄마, 이런 게 사실 꿈이긴 하죠. 이세 히데코처럼 아름답게 나이 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청중2  저는 첫 문장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를 보는 순간 ‘내가 너무 하늘을 안 보고 살았구나.’ 깨달았어요. 사소한 순간들을 느끼고 감동하는 게 행복인데 말이죠. 그래서 첫 문장부터 마음에 와닿았어요.

 

사서  맞아요. 오늘 하늘 한번 보세요. 하늘이 굉장히 좋은 날입니다.

 

청중3  저는 뒷부분에 나오는 이 대목이요.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요. 나름 잘하려고 애썼지만 돌아보니까 그다지 잘해 온 것 같지가 않았어요. 아이가 좀 천천히 와도 기다려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너는 어떻게 할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질문하면서 기다려줘야 하는데, 한 번쯤은 생각나서 가끔 물어볼지언정, 결국은 제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이 질문이 저한테 딱 와닿았어요. 사실 이 책에 있는 질문이 다 와닿고 너무 좋았어요.

 

사서  그렇죠. 가끔이나마 스스로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질문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을 옆에 두고 자주 읽으면 그때마다 나와 대화할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북데이트X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2)로 이어집니다.

*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