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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3)

전은지  뭔가 감동적이에요. 제 안에도 지치지 않는 소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교하도서관에서 북데이트를 처음 시도하는 모험적인 자리에 위고출판사를 모시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올해 초에 출판계에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 있었죠. 국내 도매상 2위 업체인 '송인서적'이 부도가 났죠. 기사로 보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위고는 그 일을 무사히 넘기셨나요.

   

재현  말씀하신 대로 송인서적이 책 도매상에서는 두 번쨰로 큰 곳이어서, 피해를 입지 않은 출판사가 거의 없었어요. 저희도 규모에 비해서는 꽤 크게 손해를 봤죠. 저희는 그 소식을 여행지에서 들었어요. 가족끼리 오랜만에 여행을 갔는데, 아는 분이 연락을 주셔서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놀라고 황당했는데, 어쨌든 우리 회사가 부도 난 건 아니니까 다시 열심히 다시 해보자, 기운을 차렸죠. 저희는 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전은지  그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는 소년의 마음'을 발휘하셨군요. 위고라는 이름을 정말 잘 지으셨네요. 그렇게 위기를 극복하면서 준비하신 신간들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피카> 이후에 새 책이 금방 나온다고 들었어요. 어떤 책인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이재현  인쇄를 막 마치고 제본하는 중인데요. 제목은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고요, 부제는 '세월호에 대한 철학의 헌정'이에요. 다음 달 16일이면 세월호 3주기인데, '백상현' 선생님이라고, 저희와 <고독의 매뉴얼>이라는 책을 같이 내신 저자 분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설명한 책이에요.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우리가 묻어둬야 할 상처로 남기지 말자고, 그 상처를 딛고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갈 가능성을 찾아나가자는 말씀을 철학적이면서도 대중이 읽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 책입니다.

이어서 다음 달에도 백상현 선생님의 신간을 낼 계획인데요. <라깡의 인간학>이라고,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깡에 대한 책인데, 원고는 이미 완성돼서 지금은 저희가 교정교열하는 단계예요. 라깡은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프로이트 다음으로 유명한 석학인데, 그분이 쓴 책은 <에크리 Ecrits>라는 책 한 권밖에 없고 내용도 너무 어려워요. 그 밖에 라깡 관련해서 나온 저술은 모두 라깡이 세미나에서 구술한 내용을 제자들이 정리해서 낸 것으로, 모두 23권이 나와 있고요. 프랑스에서 <에크리>가 처음 나왔을 때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 그 책 다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워요. 그래서 혹자는 라깡이 아무도 자기 책을 읽지 못하게 일부러 어렵게 쓴 거 아니냐고까지 얘기할 정도예요. 라깡이라는 학자가 워낙에 어떤 의미가 하나로 고착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함부로 해석할 수 없도록 의도해서 쓴 게 사실이고요. <라깡의 인간학>은 그 제자들이 엮은 23권 책 중에서 라깡의 정신적인 지형도를 알아볼 수 있고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미나 7권>을 백상현 선생님이 풀어서 설명한 책입니다. 4월 중에 나올 예정이에요.

5-6월쯤에는 자녀교육서를 한 권 낼 예정인데, 가제는 <애착육아에 반대한다>예요. 최근에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주제와 맞닿은 책이기도 한데요. 저희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애착육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엄마와 아이 간의 애챡관계에서 발생하는 유대감이 아이의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해서 한동안 애착을 독려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어요. 믈론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부모와 아이가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가 성장한다는 게 맞는 말이죠. 근데 <애착육아에 반대한다>의 저자는 애착관계를 너무 강조하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부모 자식 간 애착관계가 충분한데, 더욱 애챡을 강조하다 보니 정도가 심해져서 이젠 애착을 넘어 '초근접 사회'가 됐다고 진단해요. 우리한테 더 중요한 건 아이와 어떻게 가까워질까보다는 어떻게 잘 떨어지고 이별할까의 문제다, 그러니 더는 더 가까워질 것을 고민하지 말자는 입장이죠. 그 지점이 많이 공감이 되더라구요. 이 책을 쓴 분도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임상활동을 하다가 돌아와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자예요. 저희가 재작년에 <공부 중독>이라는 책을 냈는데, 그 책과 <애착육아에 반대한다>의 관점이 맥을 같이해요. 그러고 나서 여름을 맞이해서는 저희를 포함해서 세 곳의 출판사가 협업해서 문고본 시리즈를 하나 내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전은지  세 출판사가 같이요? 요즘에 민음사의 쏜살문고나 유유출판사의 땅콩문고 같은 문고본 시리즈가 화제던데요.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예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중당문고 같은 문고본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던데요. 최근에 다시금 문고본이 부활하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근데 세 출판사가 협업해서 하나의 시리즈를 내는 일이 흔치 않은 사례네요. 어떻게 그렇게 실험적인 기획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재현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출판사들이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한 시도로 문고본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좀 더 가벼운 주제, 재미있는 내용을 담기에 문고본이 적절한 형식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와 같이 문고본을 기획한 출판사도 모두 1인 출판사예요. 위고는 2인이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1인출판사로 취급을 당하는데요. (웃음) 어쨌든 가까이 지내는 세 곳의 1인 출판사 대표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가 성사된 일인데요.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사회적 역할이나 직업적인 커리어 같은 것밖에 없는데, 그런 거 말고 남들이 다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몰두하고 스스로를 나타내보일 수 있는 어떤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라면 200쪽 내외의 작은 문고본이 적당할 것 같았는데, 사실 시리즈를 내는 게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새 책을 꾸준히 붙여 나가는 것도 어렵고 해서 큰 출판사에서도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더군다나 저희같이 작은 출판사에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혼자서는 어려우니 세 출판사가 같이 해보자, 의기투합한 거죠. 1인 출판사의 좋은 점, 그러니까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고 리스크를 크게 걸지 않을 수도 있는 점을 활용해서 우리들 스스로 재미를 추구하면서 일을 벌여보자 싶어서 시작했어요. 지금은 원고를 모으는 단계인데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가벼운 책이니까 휴가철을 겨냥해서 내볼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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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지  여행 갈 때 가벼운 책 한 권 들고 떠나도 좋겠네요.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 출판사의 새 문고본도 함께 기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도서관에서는 늘 독자들께 책을 소개하고, 저자 강연도 많이 열어서 저자와 독자를 잇는 일에 힘써요. 그런데 정작 책 만드는 분들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는 별로 없어요. 교하도서관에서는 2014년부터 '출판사 도서관에 말 걸다'라는 코너를 운영하면서 출판사를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일을 해왔지만, 전시 공간을 채워야 해서 출간 종수가 많은 출판사 위주로 코너를 꾸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없는 작은 출판사들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북데이트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북데이트 첫 시간, 어떠셨어요?

 

청중  좋았어요.

 

조소정  작은 출판사가 책 만드는 얘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귀기울여서 들어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전은지  북데이트 첫날이라 위고 대표님께서 독자분들이 얼마나 오실지,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근데 예상보다도 훨씬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 북데이트 시간에는 '천개의바람'이라는 출판사를 만날 거예요. 다양한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인데, 특히 일본 그림 작가 '이세 히데코'의 책을 많이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생명을 그리는 작가 이세 히데코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충만한 삶'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늘 이야기 들려주신 안소영 작가님과 위고출판사의 두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북데이트에 참여해주신 위고출판사 조소정, 이재현 두 대표님과 안소영 번역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당일 책판매부스는 발전소책방.5에서 준비해주셨습니다.

**** 북데이트는 지역독서문화연대협약서점(땅콩문고, 발전소책방.5)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