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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1)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초대: 위고 조소정, 이재현 대표+안소영 기획/번역가

일시: 2017년 3월 29일 10:30~12:00

장소: 교하도서관 3층 브라우징룸

  

 

 

전은지 안녕하세요. 교하도서관 사서 전은지입니다. 북데이트는 교하도서관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행사인데요. 도서관 근처에 있는 동네책방과 함께 힘을 모아서, 작은 출판사와 독자 여러분을 이어드리는 자리로 마련했어요. 3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북데이트'라는 타이틀로 여러분들 찾아뵐 예정입니다.

북데이트 첫 시간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위해서, 마을에 있는 카페 '커피발전소'와 빵집 '꿈꾸는섬'에서 다과를 준비해주셨습니다. 특히 여기 '시나몬롤'은 꿈꾸는섬에 없는 메뉴인데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책 <피카>와 어울리는 빵으로 만들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이렇게 흔쾌히 만들어주셨어요. 오늘 이 자리, 다과 드시면서 편안하게, 데이트하듯이 즐겨주세요.

북데이트 첫 시간의 주인공은 위고출판사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을 담은 요리 에세이 <피카>를 함께 읽고,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이 책을 기획하고 번역한 안소영 작가님과 위고출판사의 조소정, 이재현 대표님이 스웨덴의 피카 문화, 그리고 <피카> 챍 출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실 거예요.

먼저, 위고출판사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조소정 안녕하세요. 위고 조소정입니다. 위고는 두 사람의 편집자가 같이 기획, 편집, 제작, 마케팅, 홍보, 복사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예요. 파주 출판단지 옆에서 일하고 있고요. 출판단지 옆에 저희 같은 1인출판사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저희들끼리는 '출판 옆 단지'라고 얘기합니다. (웃음) 위고는 2013년에 <소년의 심리학>이라는 첫 책을 내고 나서, 지금까지 19종을 출간했어요.

<피카>는 2년 전쯤 기획된 책이에요. 번역한 안소영 작가님이 이 책의 원서를 처음 보여줬을 때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컸어요. 책을 넘겨보면 레시피가 있으니 요리책인데, 기존의 요리책하고는 느낌이 크게 달랐어요. 요즘에는 완성된 음식을 초근접으로 찍어서 밀가루 알갱이까지 다 보이도록 표현한 고해상도 사진들도 채워진 요리책들이 경쟁적으로 출간되는 추세인데요. 그런 상황에서 <피카>는 굉장히 배짱 좋게 그림만으로 채운 요리책인 거예요. 처음엔 그 점이 신선해서 끌렸는데 내용을 검토하면서 '피카'라는 정신에 더 많이 끌리게 됐어요. 그 당시 저에게도 굉장히 필요한 어떤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책이더라구요. 그래서 출간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전은지  위고 출판사에서는 <소년의 심리학> <감정의 성장> <고독의 매뉴얼> 같은 심리학 책을 주로 내셨죠. 작년에는 엄기호 선생님이랑 <공부 중독>이라는 책도 내셨고요. <공부 중독>은 도서관에서도 인기 있는 책이어서 눈길이 많이 갔는데요. <피카>는 방금 말씀하신 대로 요리 에세이예요. 그동안 위고출판사에서 내신 책들의 결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위고에서 요리책을?' 하는 생각에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조소정 사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냈어요. 출판사에 따라서는 인문 분야에만 주력한다거나, 철학책을 중심으로 낸다거나 하는 식의 전략이 있기도 한데요. 저희는 한 분야에 주력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관심이 가고, 내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면 출간하자는 마음으로 책을 냈거든요. 그런 기준으로 책을 내다 보니 심리 분야 책이 가장 많이 나왔어요. 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쌓이고 보니 심리 책이 주력 도서가 된 셈이죠. 근데 그 사이사이에 드로잉 책도 냈고, 가드닝 책도 냈어요. 그러니까 <피카>라는 요리 에세이를 내는 게 저희로서 아주 특이한 행보는 아니었어요.

    

 

 

전은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피카'라는 게 단어로도, 문화로도 익숙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도 이 책을 어떻게 발견하고 기획해내셨는지 궁금해요. 여기 책을 읽고 오신 분들도 많지만,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피카'가 정확히 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조소정  이 책을 기획하기까지의 과정은 옆에 계신 안소영 작가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안소영  안녕하세요. 안소영입니다. 우선, 먼 나라 스웨덴의 일상 문화 '피카'를 대힌민국의 파주, 그것도 작은 동네 도서관에서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피카에 대해서 알려드릴 만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1년 가까이 조사한 것,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피카는 때로는 명사도 되고 때로는 동사도 되는 단어인데요. 명사로는 커피 혹은 커피브레이크이고요. 동사로는 우리말로는 '커피를 마시다'라고 옮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엔 뭔가 조금 빠져 있어서 '피카하다'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스웨덴에서 피카는 종교나 다름없다고 해요. 요즘 스웨덴 사람들은 신앙심이 없지만, 피카만큼은 종교처럼 스웨덴 사람들의 삶 속에 뿌리 박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카가 뭘까요. 허핑턴포스트에서 피카를 위한 몇 가지 지침을 정리한 게 있더라구요. 그것에 따르면 맨 먼저, 아늑한 공간을 찾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어제, 오늘 모일 이 공간의 사진을 미리 받아보고 감동받았어요. 이렇게 아늑하게 공간을 꾸며주시다니! 오늘 이 자리가 피카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공간을 아늑하게 꾸미기 위해서 양초, 푹신한 의자, 벽난로 등을 활용한다고 해요.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런 공간을 스웨덴어로 '미시그mysig'라고 표현해요. 피카를 위해 공간을 '미시그하게' 꾸민 다음에는 커피를 꼭 한 잔 들어야 합니다. 스웨덴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전세계 3위 안에 항상 들거든요. 그만큼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에 커피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피카를 위해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달콤한 것 또는 오픈샌드위치를 곁들이는데요. 샌드위치에는 특이하게도 치즈와 함께 잼을 얹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우리는 보통 샌드위치에 잼하고 치즈를 같이 넣지 않잖아요. 어쨌든 이처럼 아늑한 공간에서, 준비한 커피와 달콤한 것을, 홀로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즐깁니다. 이것을 하루에 '여러 번' 반복하는 것, 이게 바로 피카예요. 어때요, 너무 쉽죠? '이거 뭐야, 우리도 맨날 하는 건데.'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요즘 세계 주요 대도시에 가면 상호에 '피카'가 붙은 카페가 성행을 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피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요. 그 이유가 뭘까요? 제 생각엔 스웨덴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최근에 유엔에서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요.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5개국이 10위권에 들었더라구요. 우리가 피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커피브레이크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일정한 생활방식에서 나오는 행복과 여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사서님께서 이 책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질문하셨는데요. 답변에 앞서 잠깐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음식에 관심이 많고, 외국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고, 길지는 않았지만 요리사로도 일했고, 미술에 나타난 음식을 연구하기도 했어요.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케이크를 엄청나게 만들어서 보내주는 딸로 알려져 있고요. 관심사도 그렇고, 해온 일도 그러하니, 당연히 요리책에도 관심이 많아요.

제가 2015년 어느 날 아마존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때는 '피카'라는 단어도, '스웨덴식 커피브레이크'라는 설명도 생소했습니다. '스웨덴식 커피브레이크가 뭐야? 커피브레이크는 그냥 커피브레이크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에 독자들이 남긴 후기를 보다가 독특한 점을 발견했어요. '스웨덴의 독특한 의식인 피카를 내 삶에 도입하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읽는 자체로 휴식과 위안이 되고 영감을 준다' 식의 후기가 많았거든요. 보통 오리책에 대한 평가는 '레시피가 얼마큼 실현 가능하고 정확한가, 사진이 얼마나 멋진가' 같은 것에 중점을 두는데 이 책에 대한 반응은 기존의 요리책과는 다른 거예요. 그제야 책을 제대로 살펴봤는데요, 일단 책이 아주 아름답더라구요. 소개된 음식은 예쁘고 간결했고요. 이런 음식을 통해서 그걸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까지 아울러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의 핵심에 끌렸습니다. "피카는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천천히, 되도록 느리게 음미하기 위한 의식이다." 여기서 '의식'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 마음속에 전구가 확 켜지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누군가와, 아니면 혼자 커피 마시는 시간을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하신 적 있나요? 없죠. 만약 우리에게도 그런 의식과 같은 시간이 있다면, 일상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책을 위고출판사에 소개했고, 출판사에서도 좋다고 해서 같이 책을 내게 됐습니다. 막상 이 책을 다 번역하고 나니까 '스웨덴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 사는 걸까?' 의문이 들었어요. 스웨덴 사람들의 피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죠. 근데 알아낼 방법이 막막한 거예요. 피카를 다룬 책으로는 한국에서 이 책이 처음이고, 아마존을 찾아봐도 해외에 나와 있는 책도 별로 없었고요. 그럼 스웨덴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피카를 한번 해보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유학생, 한국인과 결혼해서 이주해 온 스웨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만난 스웨덴 사람들이 피카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굉장히 당황하는 거예요. 할 말이 없다는 식이었죠. 그들에게는 피카가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라서, 그걸 특별히 거론하는 걸 생소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제가 만난 스웨덴 사람들에게 들은 피카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스웨덴의 모든 회사에서는 최소한 하루 1번, 일반적으로는 오전과 오후 2번, 피카 시간이 있어요. 기업이든 관공서든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제가 만나본 중에는 스웨덴에서 직장을 다녀본 한국 분도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특정 시간이 되면 전 직원이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굉장히 놀랐대요. 알고 보니, 피카 시간이었던 거죠. 그분이 다니던 회사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어떤 회사에서든 피카는 보장되는 권리라고 합니다. 피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스웨덴의 뿌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하고요. 금요일 피카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가져오는 게 일반적이라고 해요. 피카를 통해서 상사와 부하직원이 위계 없이 평등하고 특별한 관계를 쌓고 거기서 바로 창의성이 나온다고도 하고요. 또 피카는 회사에서만 하는 게 아니에요.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를 한다고 해요. 생일이면 생일 피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환영 피카, 이런 식으로요.

피카를 취재하러 한국에 있는 이케아에도 찾아갔는데요. 거기 직원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처음 피카를 시행했을 때, 한국인 직원들은 피카를 휴식 시간으로 잘못 알고 은행도 다녀오고 그랬다고 해요. 피카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이케아 광명점 직원 사무실에는 '피카룸'이 있는데요, 거기 이렇게 써 있어요. "피카는 스웨덴의 커피브레이크로,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의 의식입니다." 이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스웨덴 문화 속에서 피카는 소통과 연결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예요. 피카를 할 때 커피랑 케이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어떤 것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혼자 피카를 할 때는 온전히 나, 내 마음에 집중하거나 자연과 교감하고, 다른 사람들과 피카를 할 때는 함께하는 사람에 온전히 집중하고 교감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거죠. 그게 기본적으로 피카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카는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요.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피카 덕분이고요.

* <우리 피카할까요?> 포스트 시리즈

http://post.naver.com/my/series/detail.nhn?memberNo=7605398&seriesNo=159093

 

*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2)로 이어집니다.

*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