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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2)

전은지  방금 안소영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포함해서, 이 책 만들면서 취재하신 과정을 네이버에 연재할 때 저도 읽어봤는데 재밌었어요. 이케아에 찾아가신 것도 그렇고, 유학생 만난 에피소드도 재밌었고요. 스웨덴에서는 어느 회사든 하루에 두 번씩 피카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하고, 또 퇴근도 우리보다 빠르잖아요. 삶의 여유를 찾는 일을 개인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예전에 독일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마트도 6시면 문을 닫는 걸 보면서 사회가 저녁 있는 삶을 이렇게 보장해주는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가정 중심의 문화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죠.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고, 그래서 가족이 모이기가 힘들어요. 야근, 특근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죠. 게다가 제도적으로 육아를 돕지 않으니까, 아이가 있는 부모는 더더욱 힘들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전적으로 가정에서 짊어져야 하니까요. 위고출판사는 부부가 운영하시는 곳이잖아요. 혹시 자녀가 있으신가요?

 

조소정   여섯살 아들이 있어요.

 

전은지 이재현 대표님은 가사와 육아에 많이 참여하시나요?

   

이재현  저희는 부부가 같이 일을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집안일도 더 분담을 하는 편이기는 해요. 저희 애가 돌 됐을 때부터 출판사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다른 아빠들에 비해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니까요. 사실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려면 물리적으로 최소한의 시간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육아라는 게 힘든 일이죠. 계속 즐거운 마음, 좋은 마음으로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조건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 조건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게,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이고요. 근데 시간이라는 게 개인의 의지만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피카>를 만들면서 보니까, 북유럽 나라들이 가정 중심의 사회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정확히 보장되고, 퇴근 시간이 이르고, 밤 문화가 없기 때문에 각자 집에 갈 수밖에 없고, 집에 가면 아이가 있으니까 자연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죠. 저는 아이 등하원도 시키고 방과 후 일과를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까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데, 그게 되게 근사한 일이에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가 커 가는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빠들은 바깥 일 위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육아에서 아무래도 소외되거나 육아에 소홀하고,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죠. 아빠들은 '어느 순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커버렸네!'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매일매일 크거든요.

 

전은지  <피카> 이전에는 '뽐뽐'이라는 그림책을 내셨죠? <내 강아지 뽐뽐> <뽐뽐의 사과> <잘 자 뽐뽐>, 이렇게 세 권 시리즈요. 이 책은 이재현 대표님이 직접 번역까지 하셨다고 들었어요.

 

재현  그 시리즈도 옆에 계신 안소영 선생님이 기획하신 책이에요. 어떤 소년과 '뽐뽐'이라는 강아지의 우정을 그린 프랑스 책이에요. 제가 불어를 전공을 해서 번역을 하게 됐죠.

뽐뽐 시리즈는 글은 많지 않고 여백이 많은 책이에요.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죠. 이 책 읽은 주변 분들 감상이나 독자 서평을 보니까, 아이들이 그 책을 읽을 때 장면마다 스스로 말을 지어내서 책에 나오는 강아지랑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뽐뽐 시리즈도 <피카>랑 어떤 면에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피카에서도 디테일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손으로 재료를 빻고 찧고 반죽하고 구워서 음식을 완성하는,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거죠. 뽐뽐 시리즈도 큰 스토리가 없어요. 그냥, 비 오는 날 소년이랑 강아지가 비 피하는 과정을 짧게 그리면서. 어떤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요.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덩어리 같은 것들, 큰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소 배제하는 문화잖아요. 자잘한 것들까지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까요. 근데 <피카>나 뽐뽐 시리즈는 분야는 달라도 공통되게 디테일에 집중하는 책이었달까요, 그 점에 끌려서 번역하고 출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전은지  뽐뽐 시리즈도 그렇고, <피카>도 그렇고, 위고에서 최근에 낸 책들이 너무 예뻐요. 사실 <피카>는 내용이나 소개하는 재료들을 봤을 때 흔히 따라 할 수 있는 요리책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표지부터 너무 예뻐서 사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딱 보자마자 일러스트가 너무 귀엽고, 게다가 요즘에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이잖아요. 그리고 표지가 만져보면 약간 폭신해요. 손에 닿는 느낌이 너무 좋더라구요.

 

조소정  스폰지북이라고 해요. 어린이책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예요.

   

전은지  근데 성인도서에서는 사실 보기 힘든 장정이어서요. 독자로서는 손에 기분 좋게 잡혀서 흡족하지만, 만드시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조소정  네. 이 책은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저를 힘들게 했고,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사실 역자는 번역 원고를 열정적으로 완성해서 진작에 원고를 주셨어요. 하지만 앞서 나오기로 한 책들 때문에 출간 일정이 밀렸어요. 출판사에서는 이런저런 일에 치이느라 출간 일정 밀리는 게 흔히 있는 일이지만요. 어쨌든 <피카> 출간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늦어지다가 작년 10월에 '이제는 내자!' 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졌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과 귀가 완전히 뉴스에 쏠려버렸어요. 그 어떤 책도 뉴스에 꽂혀 있는 눈과 귀를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더구나 피카는 '일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순간을 음미합시다.'라고 말하는 책이잖아요. 물론 정치 뉴스가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피카가 지향하는 메시지를 책으로 전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해요. 거기에 응답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요. 근데 '이런 시국에 <피카>를 펴낸다면, 우리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출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저희 스스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역자와 의논한 끝에 한 달 정도 추이를 보고 나서 출간을 하기로 하고 제작을 미뤘어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국정농단 사태가 마무리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예요. 결국 생각을 고쳐먹었죠. '이 상황에도 낼 수 있다!' 그래서 제작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결국 계획보다 한 달 뒤에야 책이 나왔습니다.

 

 

<피카> 책을 냈더니 많은 분들이 호감을 보이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그중에서 기자 한 분이 전화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분이 "왜 지금 새삼스레 피카죠?" 묻는 거예요. 이미 한참 전부터 북유럽의 인테리어, 가구, 그릇이 크게 유행했는데, 왜 새삼스럽게 다시 북유럽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냈느냐는 거예요. 마침 비슷한 시기에 북유럽의 '휘게 라이프'까지 소개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거든요. 그때 설거지를 하다가 전화를 받은 데다가 (웃음)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이라서 기자분의 질문에 답할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운이 좋게도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저절로 정리가 되면서,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근사한 대답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떄 대답은 이랬습니다.

“처음에 북유럽의 아주 아름다운 패브릭 패턴, 가구, 그릇이 우리의 눈을 먼저 사로잡았어요. 그다음에는 스위덴의 교육과 복지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죠. 북유럽의 제도적인 뒷받침에 인문학적으로 관심을 기울였고요. 그리고 이제는 좀더 깊은 일상, 정신적인 배경이 녹아 있는 휘게나 피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아주 본질적인 부분에 가닿은 거죠."

제 답을 들으면서 기자분이 아주 열정적으로 타이핑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어요. (웃음) 그분도 동감을 한 거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 따로 정리만 한 했다 뿐이지, <피카>를 기획하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거예요. 북유럽 사람들이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 공간을 예쁘고 안락하게 꾸미고 싶어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릇도 예쁜 게 좋고, 가구와 인테리어도 디자인에 더 마음을 쓰고. 그런데 그런 열정에 온 사회가 공감을 하니까 교육이나 복지까지도 일상을 제대로 꾸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받쳐주고. 이런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운 거죠. 그때 기자분께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독자들도 그런 면에서 피카나 휘게 라이프에 더 끌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휘게'부터 '라테파파'까지…"북유럽, 오브제 아닌 문화로" (연합뉴스 2017.1.2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8993132

 

전은지  아무래도 불황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작은 재미를 많이 찾더라구요. 최근에, 아주 귀한 그릇은 평소에 안 쓰고 잘 모셔놓기만 하고 평소에는 싸구려 그릇만 쓰고 있더라, 좋은 걸 눈앞에 놓고도 쓰지는 못하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누군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요. <피카>가 그 사연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네요. 일상을 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지금 이 순간을 좋게 만들자는 인식이 점점 퍼져가는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욜로 라이프'와도 맞아떨어지고요. <피카>출간 지연으로 고생하셨지만, 그 바람에 변해가는 사람들의 생각에 딱 맞춰서 출간된 것 같아요.

하지만 피카를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는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많죠.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이케아 직원이 피카 시간에 은행 갔다 왔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만큼 당장 눈앞에 닥친 일도 해결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는 거죠. 그러니까, 한참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자, 피카 타임이야, 다들 커피 마시게 모여." 하면 "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럴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휴식 시간 하면 노는 분위기 같아서 직장에서도 막 독려하고 장려하고 한다는 게 사실 상상이 안 되거든요. 이케아에서 일하는 한국 직원들이 피카 문화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소정  안소영 선생님이 이케아에 취재 갈 때 저도 같이 갔는데요. 거기서 일하시는 한국 분들도 피카를 누리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스웨덴 직원들 못지않게 한국 분들도 이제는 피카가 몸에 익으셨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우리도 그것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회사가 제도적으로 받쳐주니까, 처음엔 당황했다고 하더라도 금세 적응을 하고 누릴 수 있더라구요. 물론 개인의 노력도 필요해요. 사실은 저도 일을 할 때 커피를 들이켜요. 빨리 마시고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요. 심지어 책상에 컵을 올려놓고 컴퓨터 모니터 보면서 커피를 마셔요. 근데 피카를 한창 만들 때는 그러지 않았어요. 피카가 지향하는 가치에 굉장히 감화된 나머지, 커피를 마실 때는 빵을 꼭 사서 곁들이고, 잠깐이라도 쉬면서 그 시간을 음미하자 싶었죠. 일을 하면서 동시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근데 지금은 다시 책상에서 일하면서 커피를 마십니다. (웃음) 일이 계속 바쁘고, 게다가 아직 몸속 깊이 체화가 덜 된 거죠. 거기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작용하고요. 우리는 늘 바쁘긴 해요. 그래도 제가 <피카>를 만들면서 깨달은 것은, 자기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가꿀지는 우선 개인이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게 지속적으로 유지돼서 한 사회의 문화가 되려면 아주 긴 시간을 거쳐 제도적, 정신적 받침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이에요.

 

 

전은지  스웨덴에서는 야근도 잘 안 한다죠.

 

조소정  야근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해요.

 

전은지  일하는 와중에 피카까지 즐기는데 어떻게 야근을 안 할 수 있는지 신기해요, 그쵸? 그런 나라들에서는 야근을 안 하는 대신 일하는 동안은 굉장히 몰입해서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야근하는 사람이 오히려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좀 찔리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요. 우리는 일하면서도 가끔 웹서핑도 하고, 잠깐잠깐 딴짓도 하고 그러잖아요. (웃음) 또 야근을 많이 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 이후의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러운 거죠. 아까 이재현 대표님이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도 도맡아하신다고 하셨죠? 두 분이 부부로서 같은 일을 함께 하다 보면 일과 생활이 막 섞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집안일과 회사 일을 어떻게 분리해가며 일하시는지 궁금해요. 이 질문은 <피카>랑 밀접하기도 하고요.

 

소정  저희 둘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게 느껴지시나요. (웃음) 서로 평가하는 게 다를 수 있을 텐데, 제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자면요. 부부가 함께 어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점이 압도적으로 좋아요. 저희가 동갑내기라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할 떄 상사가 없는 거예요. 회사 다닐 떄는 그냥 해야 해서 하는 일들이 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불필요한 일은 그냥 하지 않아요.

또 좋은 건, 오늘 이 사람이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을지, 모를 수가 없어요. 같이 일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상대를 헤아리게 되는 점도 좋아요. 그 반대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죠. '오늘 당신 놀았잖아!' 뭐 이런 거. (웃음) 그런데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어요. 우선은 집안일과 회사 일을 다 나눠서 하니까 떄로는 부부가 아니라 두 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팀원 같은 거예요. 남들은 부부가 같이 일하니까 더 가깝고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아서 좋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굉장히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어떤 떄는 남편이 아니라 회사 동료 같은 거예요. 저는 그 거리감을 극복하고 남편과 더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집에서 일을 해요. 1층은 일하는 공간으로 쓰고 2층에서 생활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1층에 내려가서 그대로 하루를 마감할 때가 있어요. 그런 날에는 '내일은 꼭 세수를 하자!' 하는 마음으로 일하죠. (웃음) 일할 떄 불필요한 과정이 없는 건 되게 좋아요. 출근 준비하고 회사까지 가는 데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리잖아요. 근데 그 한 시간을 다르게 쓸 수 있죠. 마음먹으면 아마 그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있겠죠. 근데 제가 노력하지 않는 이상 생활이 되게 느슨해지기 쉬워요. 그런 점은 좀 더 노력을 해서 생활과 일을 분리해야겠다 생각해요. 또 하나 안 좋은 점은, 분명히 회사 일을 같이 하는데 나만 일을 더 한다는 걸 예민하게 느껴요. 서로 하루 일과를 너무 속속들이 알잖아요. 근데 구조상 아내인 제가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걸 느낄 때 힘들죠. 특히 체력이 달리고 하면 더더욱요. 이건 우리 세대의 한계인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불평등을 공기처럼 마시고 살아서, 개선하려면 목소리를 높이고 갈등을 겪어야 하는데 그게 두렵고 귀찮아서 내가 좀 더 하자, 이러고 말죠. 다음 세대는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은지  어려우셨을 텐데 이렇게 개인적인 얘기까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질문드린 게 좀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오늘 집안이 평안하시기를 바라고요. (웃음)

저 뒤쪽에 위고 출판사 로고를 붙여 놨는데요. 대표님이 불어를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그럼 '위고'는 프랑스어인가요?

     

조소정  '위고'라는 이름은요, '브라이언 셀즈닉'이라는 작가의 <위고 카브레>라는 작품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칼데콧 상도 받고, 영화로도 개봉된 작품인데요. 영화는 영어식 발음을 써서 <휴고>라고 나왔더라구요. 예전부터 그 책의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다니던 출판사를 먼저 그만뒀어요. 너무 지치기도 했고, 제가 기획한 책을 내고 싶은 열망이 있어서 회사를 직접 차리고 싶기도 했고요. 제가 먼저 회사를 열어서 운영하고, 남편은 출판사를 좀 더 다니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자 싶었죠. 근데 남편도 얼마 안 돼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책 없었죠. 그래도 그때는 이왕 할 거면 좀 무모해도 괜찮다, 어차피 나중에 둘이 같이 하려고 했던 거니까 시작부터 같이 하면 그만큼 빨리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회사 이름을 정할 떄, 그런 무모함까지 포함해서 '소년성'이라는 것을 똑같이 마음에 담게 되더라구요. 소년성이란 호호백발 할머니 마음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해 눈을 크게 뜨고 용기를 가지고 좀 무모하다고 지적받을 수 있는 것도 시도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을 때 '위고'가 떠올랐어요. <위고 카브레>의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파리의 기차역에서 역경을 헤치고 살아가거든요. 그래서 출판사 이름을 '위고'라고 정하고 어떤 화가 분께 로고를 의뢰했죠. 그래서 위고에서 낸 책을 보면 책등에 소년이 확 뛰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요. 그 이미지는 책에 따라서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데 <피카>에는 안 넣었어요. <피카>는 책 자체로도 이미지가 워낙 화려해서 그림 로고까지 넣지는 않은 거죠. 소년'으로 로고 이미지를 만들고 나니까, 캐치프레이즈까지 저절로 떠오르더라구요.

“각자의 마음속 지치지 않는 소년을 응원합니다."

위고출판사를 설명하는 이 문장을 그떄 만들게 됐어요.

     < 위고출판사의 소년 로고

 

 

 

* [북데이트X위고] 피카,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법 (3)으로 이어집니다.

*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