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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천개의바람] 충만한 삶을 위해 던지는 질문 (3)

* 녹음에 문제가 있어, 일부 내용이 중략되었습니다 * 

 

사서  이세 히데코의 작품 중에 『나무의 아기들』은 조금 독특해요. 연필로 그린 듯한 스케치 장면이 대부분이어서, 약간 그리다 만 것을 그림책으로 인쇄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데요. 사연이 있나요?

 

최진  천개의바람에서 나온 나무의 아기들』은 일반 그림책이랑 크기가 비슷한데요. 사실 일본에서는 엽서 정도 크기로 나온 책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엽서 크기로 책을 내면 유통에도 어려움이 있고, 책값을 제대로 매기기도 어려워서 책 크기를 키워서 냈어요. 작가는 이 책으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대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기 모습으로 장면을 그렸는데, 그러다 보니까 메시지만 너무 두드러져서, 씨앗을 아기들로 의인화한 그림으로 바꿔 그린 거예요. 어떤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어떤 씨앗은 나뭇잎과 함께 떨어지고, 어떤 씨앗은 콩깍지 속에 들어 있고, 하는 식으로 씨앗이 세상에 퍼져나가는 장면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죠. 그 장면들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나무의 씨앗이고, 세상을 향해서 스스로 나아갈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봤을 때 장면 하나하나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어 ‘이건 무슨 나무네, 저건 무슨 나무네.’ 이야기할 수 있는 재미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대요. 이 책은 그 씨앗들이 모여서 숲을 이루는 모습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될 거야.”라는 문장으로 끝맺어요.

『나무의 아기들』은 일부러 엽서 크기로 작게 만들고, 두껍고 딱딱한 양장으로 만들지도 않았어요. 애초에 상업 출판물이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 배포하려고 만든 책이니까요. 이런 말씀 드리면 그런 활동이 바로 출판사의 사회적 기능 아니냐고 말씀하시기도 하던데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기능을 감당할 만큼 돈을 많이 버는 출판사는 한 군데도 없어요. 반면에 일본의 강담사(고단샤)나 집영사(슈에이샤) 같은 출판사는 한 회사 매출이 우리나라 단행본 시장을 다 합친 것보다 높아요. 어떤 사회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서 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일본 출판사의 규모에 비하면,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우리나라 유명한 출판사들이라고 해봤자 규모가 너무 작아요. 그래서 자꾸 나라에다가 그런 일을 해달라고 요구하게 되는 거고요.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평소에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나 봐요. (웃음)

어찌 됐든 『나무의 아기들』을 낸 출판사는 피해 지역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림책을 한 권씩 전달하자는 작가의 마음에 동조를 해서 수만 권의 책을 제작, 배포했어요. 그 책이 이후에 단행본으로 만들어지면서 흑백 장면 사이에 컬러 두 장면이 들어가고, 양장으로 만들어지게 된 거죠. 돈을 받고 팔 거라는 점을 감안해서요. 그 판권을 제가 계약해서 한국어판을 출간하게 됐고요.

이세 히데코 작가의 모든 작품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다독임 같은 게 일관되게 담겨 있어요. 작가 스스로 자기 작업을 통해 그런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그렇게 완성된 책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서천개의바람에서 낸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랑 『높은 곳으로 달려!』도 지진 피해를 다룬 그림책이죠. 그 책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최진 저희가 지금까지 80여 종의 책을 냈는데, 그중에서 60여 종이 그림책이에요. 주제별로 분류해보면, 치유나 극복에 관한 그림책이 좀 많은 편이에요. 그 주제가 아마 저의 관심사였던 모양이에요. 특벌히 ‘내 관심사는 이쪽이니까 이런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내고 보니까 그런 책들이 많았어요. 이세 히데코 작가의 책들만 봐도, 『천개의 바람 천개의 첼로』는 고베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나무의 아기들』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는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피해 지역을 돌면서 이세 히데코가 주목했던 건 아이들하고 나무들이었어요.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나간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이 돋아나고 모양이 변형됐을지언정 다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대요. 어떻게 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의 텍스트를 찾아낸 거예요. 이 책의 글은 이세 히데코가 직접 쓴 게 아니거든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그림책으로 만든 거예요. 이 책을 통해 이세 히데코는,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을 건네요. 이 책은 『아이는 웃는다』의 전편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만나고 헤어지는, 그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서로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니 헤어질 때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하는 얘기를 담고 있죠. 이 책에서는 세상을 여행하는 곰이 주인공인데요. 그 곰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죠. 근데 곰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무를 다시 만나러 갔더니 나무는 베어져서 풍차가 된 거예요. 곰이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하고 슬퍼하니까, 풍차가 된 나무가 이야기를 하죠. 나는 죽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았고, 그러니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세월이 흘러 하늘나라로 간 곰은 사내아이로 태어나고 나무는 민들레로 태어나서, 둘이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이 책은 끝이 나는데요. 그렇다고 윤회나 환생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기로 다시 태어나든, 흙으로 다시 돌아가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낸 책 중에 『높은 곳으로 달려!』라는 책이 있어요 천개의바람 책 중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이에요. 근데 책을 보시면, 왜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건지 의아하실 거예요. 사실 특별히 잘 팔린 이유는 책에 있다기보다, 독후감 대회에 대상 도서로 선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어린이책이 잘 팔리려면 어느 기관 추천도서나 대회용 도서로 선정되는 게 최우선이에요. (웃음)

『높은 곳으로 달려!』는 제가 원래 좋아했던 화가의 책이에요. 이토 히데오라고, 『친구랑 싸웠어!』라는, 표지에 드러누워서 하늘 보고 울고 있는 아이가 크게 그려진 그림책을 그린 화가예요. 예쁘거나, 누구나 좋아할 만큼 호감이 가는 그림은 아닌데, 저는 그 사람의, 되게 거칠어 보이는 그림이 좋았어요. 그래서 이토 히데오의 후속작을 내려고 일본 출판사에 연락을 했어요. 근데 일본 사람들은 가끔 이상해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가 내 거를 사고 싶다고 하면 ‘아 예, 고맙습니다, 사 가세요.’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안 판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근데 일본 출판사가 말하기를 “『높은 곳으로 달려!』는 일본에나 해당하는 그림책이지, 한국에서는 관심이 없을 텐데요. 판권을 안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저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책이 어떤 이야기냐면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당일에 바닷가에서 5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가 있었어요. 학생 수가 초등학교, 중학교 합쳐서 3천 명쯤 되는 작은 소도시였는데,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지진 당일에 아이들이 한 명도 죽지 않았어요. 대지진 규모가 워낙 커서 한참 떨어져 있는 도시들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죽었는데, 바로 코앞에서 파도를 맞은 도시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했고요. 그 후로 일본에서는 그곳이 한동안 희망의 아이콘, 극복의 아이콘으로 기사화가 많이 됐어요. 근데 일본 사람들은 또 특이한 게, 자성을 되게 많이 해요. 그래서 또 이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해요. ‘대지진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만 주목해선 안 된다, 그러면 결국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리하여 어느 날 갑자기 그 도시에 대한 기사화를 중단하죠.

 

 

어쨌든 그 도시가 한참 화제가 되던 시기에 사시다 가즈라는 여성 르포 작가가 직접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인터뷰했고, 그 증언들을 바탕으로 대지진 당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재구성해서 그림책으로 만든 것이 『높은 곳으로 달려!』예요. 그래서 그 책에는 그날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어떤 원칙, 급박한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꼈던 마음 같은 것들이 들어 있어요. 글을 쓴 사시다 가즈는 인터뷰하러 그 지역에 들어갔다가, 아예 그곳에서 3년이나 머무르면서 구호 활동을 도왔어요. 구호 활동을 마치고 나서는 재난 지역 아이들을 그린 두 번쨰 그림책 『코스모스 공원의 아이들』을 냈어요. 살아남은 아이들의 ‘그날’ 이야기와 ‘그 후’ 이야기를 그림책 두 권으로 엮은 거죠. 『높은 곳으로 달려!』랑 『코스모스 공원의 아이들』은 이토 히데오라는 화가를 좋아한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저희 출판사가 그림책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잘 담겨 있기도 했으니 여러 가지로 인연이 좋았죠. 앞으로도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책들을 계속 낼 예정입니다.

 

사서『높은 곳으로 달려!』는 저도 아주 감동 깊게 읽었어요.

 

최진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사서네. 그런 주제를 잘 전하면서 한편으로 지진이 나면 일단 높은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강력하게 전달해서 좋았어요. (웃음)

아까 독후감 도서로 선정되는 게 판매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도서관에서도 학교나 기관에서 추천한 어린이책 권장도서 목록을 들고 와서 거기 있는 책들만 다 빌려 가시는 분들이 많기는 해요. 실제로 추천이나 선정이 어린이책 매출에 그 정도로 크게 영향을 미치나요?

 

최진 부모님들이 자녀를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죠. 실제로도 아마 그럴 거예요. 근데 사랑은 사랑이고, 에너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읽을 책을 고를 때는 부모님들 자신이 읽을 책을 고를 때 들이는 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아요. 너무 번거롭고 어려운 문제라서, 빌려주든 사주든, 아이들한테 책을 골라 줄 때 남의 힘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아요. 뭔가 공신력 있는 단체의 힘을 빌리고 싶고, 학교의 권위에 기대고 싶고. 그래서 성인 단행본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어린이책은 추천도서로 선정이 많이 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한데, 베스트라고 해도, 어린이책 시장이 성인책 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과 그러지 못한 책의 매출 차이는 성인 책만큼 크지는 않아요.

전국적으로 도서관이 많이 생기고 있죠. 많은 분들이 그걸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출판사로서는 도서관이 늘어나는 현상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작은도서관이 늘어나고, 법이 바뀌어서 아파트 단지 안에도 도서관이 생기는데, 정작 거기 들어가는 책은 좋은 책 우선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형편에 맞는 책이 들어가요. 거기다, 작은 도서관은 관리하는 분이 없으니까 평소에 닫아놓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 어떤 상태가 되냐면, 책이 집 가까운 데 많이 있으니까 굳이 사볼 필요는 없는데 책을 볼 수는 없는 상태가 돼요. 집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책이 1천 권, 2천 권이 쌓여 있는데, 그래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많은데 그중에서 정작 읽을 만한 책이 없거나 읽을 만한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도서관 확대가 독서 인구 확대로 이어지질 않는 거죠. 말하자면 굴비를 매달아놓고 저걸 보면서 밥을 먹으라고 하는 상태랄까요. 또 도서관은 늘어나도 도서관이 구입하는 책은 늘어나지 않아요. 근데 도서관이 늘어나니까 개개인이 책을 안 사요.

어린이책에서 납품 판매의 비중은 일반 단행본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어린이책 10권이 팔리면 그중에 한 6-7권 정도는 도서관이나 학교나 학원 같은 데서 강제 구매하는 수요예요. 팔리는 어린이책 10권 중 3-4권만 책이 좋아서 사보는 독자들의 수요인데, 그것만 보고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끊임없이 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면 도서관이 늘어나서 초판을 소화해주면 출판사는 마음 놓고 좋은 책을 낼 수 있지 않으냐고 믿고 계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것도 현실하고는 괴리가 있어요. 어린이책은 특히 초판만으로는 손익분기를 넘기기가 어려워서, 초판을 다 팔고 재판을 거듭 찍어야 수익이 나는 구조예요. 근데 도서관들은 한번 구입한 책은 다시는 사지 않아요. 구입한 지 3-4년이 돼서 낡아도 복본이라고 해서 구매를 안 하죠. 그리고 중복되는 책을 솎아내려고 항상 최근의 신간만 구매해요. 학교도 마찬가지로 신간 위주로만 구매를 하죠. 그래서 어린이책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책마다 초판만 팔고 그만 찍는 거예요. 근데 책 하나를 기획해서 낼 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초판이 다 팔리면 또 재판을 찍죠. 근데 재판 찍어가지고 납품이 아닌, 전체 10분의 3에 해당하는 자발적인 독자들이 다 사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책을 몇 년씩 창고에 놔두면 다 손해예요. 제작비는 책 찍자마자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는데 책 판매 대금은 책이 팔려야 출판사에 들어오고, 책 보관하는 창고 이용료도 만만치 않고요. 그러니 또다시 신간을 내서 구간이 못 채운 부분을 메우죠. 저는 어린이책 출판사가 돈을 벌고 살아남는 건 기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데, 물이 빠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지 않고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부어서 독을 채우고 있는 셈이니까요.

저는 1999년부터 출판 일을 시작했는데요. 그때는 출판 호항기여서, 책이 없어서 못 파는 경우도 있었어요. 책 하나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트럭째 서점으로 들어가고, 서점마다 책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싸우고, 서점에서 출판사로 와서 돈을 먼저 줄 테니 책을 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어요. 지금은 뭐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죠. 그때와 지금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예요. 근데 사실 출판계만 어려워진 건 아니죠. 슈퍼도 많이 없어졌고 세탁소도 많이 없어졌고 사진관도 다 없어졌는데 출판사만 왜 없어지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출판사도 자영업이니까 완전 경쟁 시대에서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면 없어지는 게 맞겠죠. 근데 출판사가 없어질 경우에 슈퍼하고 세탁소가 없어졌을 때보다 훨씬 더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칠 테니까, 이 책을 내가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안 만들 거니까, 그래서 아마 그런 점을 감안해서 계속 나라에 출판계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정책적으로 보조해야 한다고 요구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저는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생긴다면, 물론 그 시간을 다 게임하는 데 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열의 한두 명은 책을 볼 거고, 책을 본 아이들 중 또 한두 명은 책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시장이 좀 더 자연적으로 돌아가고,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납품도서에 선정됐기 때문에 출판사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어떤 애들이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 또는 스토리를 참 좋아해서 이 책이 인기가 있어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바라죠.

 

사서 부모님들이 추천도서 같은, 다른 사람이 골라준 책을 읽히는게요. 좋다고 증명된 걸 아이들한테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책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잖아요. 이 사람한테 좋은 게 다른 사람한테는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 개개인의 취향과 요구를 제일 잘 아는 부모님들이 책을 많이 보시고 아이한테 제일 잘 맞을 것 같은 책을 직접 골라주시는 게 좋겠죠. 그러면 그 책을 언제 다 보고 고르느냐, 그렇게들 말씀하시기는 하죠. 근데 사실 쇼핑만 해도, 많이 해본 사람이 좋은 물건 사잖아요. 책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이 좋은 책 많이 발견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아이에게 좋은 책 읽히고 싶으신 부모님들은 무엇보다 책을 많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6살인데, 어릴 때부터 잠자기 전에 책을 세 권 정도 읽어 주던 게, 이제는 아예 습관이 돼버렸어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은 날에도 아이는 세 권을 꼭 읽어야 된다고 해요. 그래도 평소에 말하는 것보다 책을 읽어줄 때 엄마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워킹맘이라 아이랑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데, 그걸로 좀 때우고 있어요.

오늘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는데요, 어떠세요? 재밌으세요?

 

청중들좋아요.

 

사서이제 오늘 북데이트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저는 오늘 사실 최진 대표님께 이 질문 드리고 싶었어요. 책 소개하러 지역에서 하는 축제까지 직접 다니신다면서요?

 

최진 천개의바람이 그림책 전문 출판사는 아니에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내다 보니까 82종 중에서 60여 종을 그림책으로 채우게 된 거죠.

제가 책을 들고 직접 행사를 다니는 이유는 이거예요. 도서관 같은 데 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많이 만나요. 근데 어린이책 출판사, 그림책 출판사가 살아남으려면 책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책을 소개해서 팔아야 돼요. 책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면 의외의 장소나 현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곳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오로지 책만 보고 ‘아, 이 책 괜찮네.’ 하고 말해주는 게 굉장히 큰 힘이 돼요. 제가 만든 그림책을 도서관에 들고 가서 사서 선생님께 직접 설명하는데 제 면전에 대고 ‘이 책 별로네요.’ 얘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대부분 좋다고 얘기하죠. 근데 행사장 천막 아래서, 제가 이 책을 만든 사람이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책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 책에 큰 관심 없던 분들이 책 자체만 보고 정말로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제가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저기 행사에 나가고 있어요. 책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지방 축제 같은 데까지 다녀 보니, 조만간 시골 장터도 갈 수 있겠다,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차에 카드리더기를 갖고 다녀요. 어디서든 좌판을 펼칠 수 있게요. (웃음) 그래서 누구든 내 책을 산다고 하면 가지고 있는 책을 팔 수 있게 준비돼 있습니다. 저는 그런 건 부끄럽지 않아요. 사서 선생님이 오늘 저더러 강연이 끝나고 여러분께 곧바로 책을 판매하기가 조금 어색하면 서점을 통해서 팔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웃음) 누군가가 저는 책을 팔 때 가장 멋지다고 얘기해줬어요.

 

사서이따 최 대표님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웃음)

오늘 천개의바람 출판사와 함께한 북데이트 시간은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청중4제가 일본 그림책을 유심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인 데다, 떄마침 최근에 제가 일본에 일주일 정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요. 확실히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문화예술이든, 경제든 전반적으로 선진국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 그 힘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며, 왜 우리나라랑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최진 몹시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저희 출판사가 일본 그림책을 많이 내기는 했어요.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측하기를, 천개의바람 사장이 일본어를 엄청 잘해서 번역도 가명으로 자기가 직접 했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출판사 시작할 때 일본어 까막눈이었어요. 지금도 떠듬떠듬 읽는 정도고요.

저는 영업자로 출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출판사를 차렸을 때 외국 책을 소개받거나 원고를 공급받을 만한 채널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직접 발로 뛰어서 책을 찾는 수밖에 없었죠. 작은 출판사고 자본금이 빤하니까 판권 경쟁이 없는 책을 찾아야 하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책을 찾다 보니 우리랑 제일 가까운 일본 책이 많이 나오게 된 거예요. 만약 우리 옆나라가 베네수엘라였으면 베네수엘라 그림책을 훨씬 많이 냈을 거예요.

그전까진 일본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요, 책을 찾으러 일본에 자주 다니다 보니, 시민 의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들을 많이 접하게 됐죠.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책을 보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되게 높은 게 굉장히 놀라웠어요. 제 생각에 한 나라의 저력은 그 나라 사람들이 콘텐츠를 얼마나 접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책을 100권 읽은 사람과 1권 읽은 사람의 저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전후에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건 국민성하고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저보다 뛰어난 걸 보면, ‘아유 그렇습니까, 저도 당신을 따라하고 싶어요.’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창피해서 안 물어보고 뒤로 가서 ‘저 사람은 저걸 어떻게 배웠지?’ 하는 정도죠. (웃음) 근데 일본 사람들은 면전에 대고 ‘훌륭합니다, 당신한테 배우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남이 나보다 뛰어난 점을 인정하고,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배워요. 배우는 데 몹시 적극적이다 보니 뭔가를 읽는 데도 적극적이고요.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번역에 어마어마한 공을 들여요. 한때 우리나라에서 서구의 책들을 들여올 때, 직접 들여오지 않고 일본어 완역판을 중역해서 들여오기도 했죠. 그 정도로 웬만한 서구 콘텐츠는 일본이 다 들여온 거예요. 그럴 때도, 그림책만은 수입을 안 했어요. 아마도 그림책은 텍스트 분량 때문이었을까요, 배우거나 번역해서 들여올 대상이라고 생각을 못한 것 같아요. 그 대신, 그림책을 자체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본의 그림책 역사가 꽤 길어요. 근데 우리는 제가 기억하기로, 1990년대 중후반에 그림책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되게 유복하게 자랐는데도, 어릴 적에는 그림책을 접하지 못했어요. 그림책을 읽고 자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주지 못했죠. 제 친구 애들이 지금 대개 중고등학생인데, 그 애들 어렸을 때 그림책 읽어준 친구들은 어린이도서연구회(어도연) 활동한 친구들밖에 없어요. 근데 사실 직장 다니면서 어도연 활동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전업주부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권해주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질문에서 너무 멀어졌나요. (웃음) 어쨌든 일본의 저력은 풍성한 콘텐츠에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소수일지라도 ‘남의 것이든 내 것이든 싹 다 읽어버리고 말겠다.’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콘텐츠를 이끌고 가는 사회죠. 일본을 비롯해서 콘텐츠가 탄탄한 나라에 나가 보면 온갖 분야의 잡지들이 서점 벽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낚시부터 시작해서 개, 고양이, 온갖 주제들이 잡지로 나오고 있어요. 그 잡지에 올랐던 콘텐츠가 모이면 단행본이 되는 거예요. 잡지가 말하자면 단행본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잡지로 한번 나와서 시장의 검증을 받고 난 콘텐츠가 단행본으로 나오는 거니까, 잡지 덕분에 단행본의 수준이나 질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거죠. 그림책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에서는 그림책도 잡지로 만들어져서 전국에 많게는 10만부가 뿌려지고, 거기서 반응이 좋으면 단행본 그림책으로 나와요.

저는 잡지가 많아야 문화가 풍성해진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잡지는 잉여의 매체거든요. 문화라는 것도 바로 그 잉여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시간이 남아돌고 에너지가 남아돌고 돈이 남아돌아야 문화라는 게 생긴다고 생각해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면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누릴 수도 없겠죠. 우리같이 이렇게 여가나 여분 없이 빡빡하게 사는 사회에서 예를 들어 ‘월간 낚시’나 ‘월간 올갱이’ 잡지가 나온다면 몇 명이나 읽겠어요. 그런 작은 주제에 관심 있어 하고 열심히 파고드는 천 명, 2천 명을 위한 잡지가 계속 나오는 나라가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그게 있고, 우리는 없죠. 왜냐면 광고가 안 붙으니까. 사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광고가 안 붙고, 광고가 없으니까 제작비를 댈 수가 없죠. 그럼 왜 안 사 보느냐, 우리는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거든요. ‘올갱이가 궁금하면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되지, 누가 돈을 주고 사?’ 하죠. 올갱이를 다룬 잡지의 콘텐츠와 네이버의 콘텐츠가 엄연히 다른데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큼 다른지도 관심 없고, 그래서 그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 차이가 점점 벌어져서 단행본 산업이 됐든 게임 산업이 됐든 우리나라와 일본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고 봐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답변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네요.

또 질문하실 분 계세요? 이번에는 쉬운 질문이신가요?

 

(웃음)

 

청중5질문은 아니고요. 그냥 출판하시는 걸 응원하는 차원에서 제가 느낀 걸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도 작년 7월에 상실의 아픔을 겪었어요. 지금 5개월 된 아들이랑 4살 아들이 있는데요. 저도 그림 읽는 게 습관이 안 돼서 두 아이한테 책을 읽어줄 때도 글 위주로만 읽게 돼요. 근데 제가 글을 읽어주면 아이는 글에는 관심이 없고 그림을 열심히 봐요. 그래서 저도 웬만하면 글을 얼른 읽고 아이랑 함께 그림을 보려고 점점 노력하고는 있어요.

근데 며칠 전에 『아이는 웃는다』라는 책을 처음 읽고 놀랐어요. 새벽에 아이들 다 재우고 고요한데,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냥 읽기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장면 하나하나를 맛있게 읽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코스 요리를 제대로 즐긴 것처럼 맛있게 읽었어요. 게다가 제가 이 책에 이입이 더 잘됐던 게, 그림에서처럼 갓난아이도 제 옆에 누워 있고, 배 볼록 나온 아이도 제가 실제로 키우고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중간에 시냇물 나오는 장면에서는 제가 실제로 시냇물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어요. 이 책을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렸는데, 정말 흡족한 시간이었어요.

저희 아이가 숲 유치원에 다니는데, 아이 데려다주러 가다 보니 이 책 속에 있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일본의 나가노 현에 계신 분이랑 여기 있는 저랑 책 한 권으로 이렇게까지 통할 수 있다는 데 신비로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이 책 내주신 출판사에 참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사서출판사 사장님도 그러시겠지만, 사서들도 이용자분들이 도서관 와서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벅차오르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거든요.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주변에 좋은 책에 대해 좋은 말씀들, 전도하듯이 전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요. 끝나서 아쉬운 분들은, 다음 달 북데이트 행사에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5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생태 관련 책을 내는 ‘목수책방’ 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나눕니다. 그 밖에도 5월을 맞아 도서관에서 마련한 좋은 행사들 많으니까요, 도서관 많이 찾아와 주세요. 끝으로 오늘 좋은 시간 진행해주신 최진 대표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끝]

* 북데이트에 함께 해주신 천개의바람 출판사 최진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북데이트는 지역독서문화연대협약서점(땅콩문고, 발전소책방.5)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