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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1)

2017 교하도서관 문화가 있는 날_북데이트 with 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일시 : 2017년 5월 31일 (수) 10:30~12:00

소 : 파주 교하도서관 3층 브라우징룸

초대: ‘목수책방’ 출판사 전은정 대표

사회: 교하도서관 전은지 사서



 

전은지(이하 사서) 안녕하세요. 교하도서관 사서 전은지입니다. 날씨 좋은 봄의 한가운데에서 샛길로 가지 않고 교하도서관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화가 있는 날에 준비한 북데이트, 세 번째 시간인데요. 그동안 교하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출판사들을 초대했는데, 오늘은 조금 멀리 서울 옥수동에 있는 생태 전문 출판사 '목수책방'을 모셨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박수)

 

전은정  안녕하세요. 저는 '나무 목'에 '물 수'를 써서 '목수책방'이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는 전은정입니다. 생태를 주제로, 지금까지 8권의 책을 냈어요. 혼자 하다 보니까 많이 내지는 못하고 1년에 4권 정도 책을 내고 있어요. 오늘 이 자리 마치고 새 책 인쇄하러 가야 하는데요, 그러면 9번째 책이 곧 나오는 거죠. 보통 1인 출판사의 생명은 10종을 낸 다음에 결정이 된다고들 해요. 저한테는 올해가 10권을 넘기는 해가 될 테니, 좀 더 잘해서 지속가능한 출판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저희 책 중에 <엄마는 숲 해설가>라는 책이 있어요. 작년에 그 책을 내고 저자와 도서관 강연을 해보려고 알아보는데, 주변 분들이 교하도서관을 많이 추천했어요. 좋은 강연도 많이 기획하시고 사서 선생님들도 훌륭하시다고요. 그래서 연락을 드렸더니 강연 요청도 아주 흔쾌하게 받아주셔서 즐겁게 저자 강연 진행했던 게 기억나요. 그 책 내고 나서 다섯 군데 도서관에서 저자 강연회를 진행했는데, 교하도서관에서 한 강연이 진행도 매끄러웠고 독자 분들 반응도 제일 좋았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교하도서관에서 이렇게 저를 다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서작년 11월에 <엄마는 숲 해설가> 쓴 장세이 작가님이 오셔서 강연해주셨죠. 마침 제가 처음으로 행사 업무를 담당한 해였는데, 작년에 제가 진행한 행사 통틀어서 그날 제일 많은 분들이 참가했어요. 60명 가까이 오셔서 강연장 문 앞까지 꽉 찼어요. 그때 강연 들으신 분들이 너무 좋았다면서, 숲 관련 행사를 좀 더 자주 열어달라고 요청하시기도 했어요. 교하도서관이 공원 부지 가운데에 있다 보니까 숲 관련 행사와 잘 어울리고, 반응도 좋더라구요. 목수책방 대표님도 실제로 숲 해설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전은정본격적으로 숲 해설 활동을 하는 건 아니고요. 사실 제가 나무랑 숲이 좋아서 생태 전문 출판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좋아만 했지, 자연과학 지식이 굉장히 부족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는 숲 해설가>를 쓴 장세이 작가가 먼저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고 나서 저한테도 그런 게 있다고 알려줬어요. 숲 해설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 들어가면 전문분야의 지식도 배울 수 있고, 관련 분야의 선생님들도 뵙고, 숲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두루 만날 수 있겠다 싶어서 처음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1년 내내 주 2회 수업을 들어야 했거든요. 그래도 많이 배우고 도움도 됐어요.

근데 사실 1년 공부하고 자격증을 딴다 해도 곧바로 숲 해설을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생태 분야는 철저하게 현장 중심 공부이기 때문에 직접 보고 관찰한 것만 기억에 남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숲 해설가 선생님들은 거의 10년차 이상에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산과 들과 공원에 나가시는 분들이에요. 그분들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고요. 저는 15종의 나무를 구별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웃음) 그래서 어디 가서 숲 해설가라고 말하기엔 창피하고요. 그래도 그때 배웠던 이야기랑 만났던 선생님들이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제가 최근에 '생태공간 목수'라는 공간을 열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숲 공부할 때 만난 선생님들 모셔다가 숲 해설도 하고 생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서작년에 <엄마는 숲 해설가> 저자 강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대표님이 저한테 동생 이름이랑 똑같다고 반가워하셨던 기억이 나요.

 

      

전은정맞아요. 도서관에서 메일이 왔는데 보낸 사람 이름이 '전은지'여서 놀랐죠. '어머 우리 동생이랑 이름이 똑같다!' 그러면서요. 제 동생은 저보다 한 살 어린데, 번역 일을 하다가 동화작가로 데뷔해서 지금은 동화를 쓰고 있어요.

 

 

사서전은지 작가님은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저랑 이름이 똑같은 작가가 있다는 걸 알고 기억해뒀었는데요. 그분이 바로 목수책방 대표님 동생 분인 줄은 이번에 알게 됐어요. 한 분은 작가로, 한 분은 출판사 대표로, 자매가 모두 책 관련 일을 하시는데요. 부모님이 교육을 어떻게 하셨나, 궁금해지네요.

 

 

전은정부모님 영향보다는 성향 탓인 것 같아요. 둘 다 어릴 때부터 서로 뭔가 각자 혼자서 하는 걸 좋아했어요.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사람들 많이 모여서 뭔가 같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고요. 혼자 할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만만한 게 책 읽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둘 다 책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둘 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어요. 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는 절대 조직 생활은 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을 하고, 영문과를 나와서 번역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아버지 뜻에 따라서 사범대학에 갔는데 너무 적성에 안 맞았어요. 대학 4년을 거의 허비했죠. 그때도 책 읽고 글 쓰는 건 좋아해서 교지 만드는 일을 했는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장래희망을 늦게 찾은 거죠. 그 후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이미 20대 후반이 되어버렸어요. 취직을 하려고 보니 가방끈 길고 경력 없고 나이 많은 여자가 들어갈 회사가 없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히 새로 창간하는 잡지사에서 나이 불문하고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힘들어도 어떻게 한번 도전해볼까 하고 원서를 넣었는데, 붙었어요.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잡지 기자 일을 시작했죠. 그 후로 여기저기 매체를 오가며 일했어요. 다니던 잡지사를 나와서 일간지 외주 기자로도 일해보고, 웹진도 만들어봤어요. 잡지뿐만 아니라 기업 사보 만드는 일도 해보고 지역 홍보물 같은 것도 만드는 등, 잡지 기자로서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다니던 잡지사가 망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한 10년쯤 일하다가 출판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사실 제 경력이나 나이를 봤을 때 출판사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조건이었어요. 근데 제가 잡지 일을 하면서도 출판에 대한 미련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투 잡을 했었어요. 출판사에 아는 선배들이 있어서, 원고 윤문이 필요하거나 취재를 해서 책 만들 일이 있으면 맡겨 달라고 부탁했었거든요. 그렇게 잡지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출판 일을 3년 정도 병행했는데, 그러다 마침 디자인하우스 출판사에 늙다리 편집자가 들어갈 자리가 난 거죠. 거기서 한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관두고 출판사를 차렸어요. 사실 출판사를 관둘 때가 이미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 일을 벌이기엔 늦은 나이였죠.

 

 

사서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갑자기 혼자서 출판사를 차리다니, 용감하셨네요.

 

 

전은정지금 생각해보면 용감하기보다 무모했죠. 디자인하우스는 실용서와 예술서를 많이 내는 출판사인데, 거기서 제가 주로 맡은 건 실용 분야였어요. 주먹밥, 사찰음식, 샌드위치 같은 음식 레시피 소개하는 요리책이랑 뜨개질책 같은 걸 만들었죠. 그 덕분에 뜨개질은 거의 전문가가 됐어요. (웃음) 실용서 만드는 일도 싫지는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만들고 싶은 책을 내고 싶더라구요. 스스로 나이에 대한 부담감도 좀 있었고요. 다니던 출판사에서 편집장이나 사장이 될 것도 아닌데, 그러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보고 싶은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느 날 결심을 했죠. 그런데 큰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오히려 출판 시스템 전반에 대해서 두루 배우기 어려워요. 제작, 디자인,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분화가 잘 돼 있어서, 편집자는 그야말로 편집만 하면 됐거든요. 심지어 편집 업무 중에서도 교정교열은 외주로 다 내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출판사를 차릴 준비가 잘돼 있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일단 부딪쳐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회사를 그만뒀죠.

 

 

사서겉으로는 아주 차분해 보이시는데, 속에는 막 끓어오르는 게 있으신가 봐요. (웃음)

 

 

전은정그런가 봐요. (웃음) 회사 관두고 퇴직금 받아서 한 달 정도 쉬고 나서, 1년 동안 출판사를 준비했죠. 어떤 책을 낼지, 퇴사한 이후부터 고민을 한 셈이죠. 어떤 주제의 책을 내는 1인 출판사를 할 것인가. 첫 책을 어떻게 낼 것인가.

 

 

사서그런 고민 속에서 주제를 '생태'로 확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전은정제 관심사가 여러 가지이긴 했는데요. 확실히 방향을 잡기 전에 저보다 먼저 1인 출판사를 차리신 분들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시작한 계기도 물어보고, 일하는 프로세스도 알아보고. 그렇게 만난 분 중에서 누군가 조언하기를, 1인 출판사가 여러 주제를 두루 다루는 게 좋은 전략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출판사를 독자들에게 빨리 각인시키려면 주력 분야, 전문 분야가 있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책 만들고 싶어서 다니던 출판사를 나온 거잖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뭔지,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한 거죠. 돌이켜보니, 제가 어릴 때부터 워낙 식물을 좋아했어요. 어릴 적 꿈이 약초 전문가였을 정도로요. (웃음) 중학교 때는 <동의보감> 다이제스트 판을 줄 쳐 가면서 읽었어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해서 결국 한의사는 못 됐지만, 이후로도 식물을 되게 좋아했어요.

또, 여행을 좋아했는데요. 우리나라 여행은 대부분 자연을 보러 다니는 여행이거든요. 숲이나 나무를 자주 보러 돌아다녔고, 나무를 보다가 이름이 궁금해지고 나무에 사는 새도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생태 전반에 관심이 생겼어요. 자연을 가까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기농에도 관심이 많아서 잡지 일을 할 때 유기농 관련 기사 기획도 많이 냈어요. 디자인하우스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편집해서 만든 게 텃밭, 토종 씨앗 관련된 책이었어요. 출판사를 관두기 직전에는 그런 식으로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우겨서 시도해본 셈이죠. 그렇게 돌이켜보고서야, 제가 좋아하는 주제가 '생태'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게다가 생태가 결국 인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주제니까 어쨌든 냈을 때 가치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트렌디한 주제가 아니니까 처음부터 많이 안 팔려도 책을 차차 쌓아나가기에는 괜찮은 분야, 지속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라는 판단이 섰어요.

근데 제가 자연과학 분야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피상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자연과학 전문서를 내는 출판사들하고 경쟁하기는 쉽지 않으니 나는 생태를 다루되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잡지 일을 오래 했으니 아무래도 일반 단행본 편집하는 분들보다 실용서 만드는 감각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제가 가진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용성이 더해진 생태 책을 내면 좀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생각으로 만든 책이 <엄마는 숲 해설가>와 4월에 낸 <우포늪 걸어서>예요. 앞으로도 실용성이 가미된 생태 책을 꾸준히 내볼 생각입니다.

 

사서처음 출판사의 방향성을 정하는 일도 어렵지만, 첫 책을 낸 이후가 더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지난 북데이트에 오신 '천개의바람' 출판사 최진 대표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큰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1인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다 해야 하고, 마케팅 방식도 큰 출판사와는 완전히 달라서 당황스러웠다고 하더라구요. 기존의 출판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1인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전은정최진 대표님은 출판사에서 마케터로 일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편집자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일할 때는 책을 완성하기만 하면 됐고, 이후에는 마케팅 담당자가 알아서 책을 소개하고 팔았어요. 그래서 마케팅을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서점 MD를 어떻게 만나는지, 온라인 이벤트 페이지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사실 출판사 내고 나서 직접 부딪쳐가며, 그때그때 닥친 일들을 해나가야 했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요. 그래도 저희 같은 1인 출판사가 계속 생기고 어찌어찌 운영해나갈 수 있는 건, 예전과는 마케팅 방식이 많이 달라진 영향도 있어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책 판매가 잘 안 되죠. 규모가 크고 유명한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전체적으로 책이 안 팔려요. 그래서 품과 돈이 많이 드는 전통적인 영업 방식, 이를테면 서점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서 "우리 책을 잘 보이는 매대에 깔아주세요." 하고 딜을 하거나 신문광고를 하는 게 별로 효과가 없어요. 요즘엔 신문광고도 거의 안 하고, 그 대신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추세죠. 과거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돈이 없어도 책을 잘 만들면 출판 시장에 뛰어들어서 경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겼달까요.

그렇다고 해서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책 소개하고 매대 진열이 잘 되게 애쓰는 게 의미 없지는 않아요. 다만, 저희 같은 1인 출판사들은 못 하는 일이죠. 혼자서 다 커버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책을 부끄럽지 않게 잘 만들자는 게 최우선이고. 만들고 난 이후에는 SNS 홍보 같은,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보는 거죠. 최근에 서울 옥수동에 '생태공간 목수'를 연 것도, 일종의 홍보 활동이에요. 출판사가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든 거죠. 책을 오프라인 활동과 접목해보면, 장기적으로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 공간에서는 저희 책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낸 생태 책들도 소개하고 있어요. 목수책방이라는 출판사에 한정하기보다는 '생태'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폭넓게 아우르고 싶어서요.

 

* [북데이트X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2)로 이어집니다.

*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