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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2)

 

사서그 전에는 북촌에서 서점 겸 출판사를 운영하셨죠?

 

전은정네, 원서동에 있었어요. 작은 사무실을 얻어서 '마루비'라는 1인 출판사랑 책방 겸 사무실로 썼어요. 일하는 공간 빼고는, 많이 모여도 다섯 명밖에 앉을 수가 없는 작은 곳이었죠. 이왕이면 그곳에서 좋은 생태 책들도 판매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저자도 모셔서 강연도 열고 싶은데 너무 좁아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공간을 넓히면 활동의 범위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에 옥수동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아직 몸은 좀 힘들지만,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사서옥수동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전은정공간을 같이 운영하는 장세이 작가가 그 근처에 살아요. 그 친구가 동네를 왔다 갔다 하다가 2층 건물에 '매매'라고 적힌 걸 발견했어요. 그날로 당장 올라가서 둘러보고 일주일 만에 속전속결로 계약을 해버렸죠. 만약에 저 혼자였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같이 한 친구가 추진력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다니면서 보니 옥수동이 참 재미있는 동네예요. 예전엔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죠. 근데 지금은 청담동에 버금가는 부촌이 됐어요. 저희 공간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는 30억이 넘는다고 해요, 한강이 보이니까. 도시에서는 자연을 향하는 것도 돈이 많은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돼 버렸어요. 그런 거 보면 좀 씁쓸하기도 해요. 저희가 세 든 건물 주변만 개발이 안 돼 있어요. 그래서 과거 달동네 시절의 주택이 남아 있죠. 거기를 아파트 단지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요. 그래서 인구가 엄청 많은 동네예요. 게다가 소위 중산층 이상이 살고 있기 때문에 교육열이 어마어마해요. 그런 곳이야말로 '생태'라는 주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근처 학교를 지나다니다 보니까, 엄마들이 하교시간에 나타나서 아이들을 거의 채 가듯이 데려가요. 검은색 세단에 애들을 싣고 어딜 가겠어요. 공부시키러 가겠죠. 그걸 보고, '아, 저 애들 뛰놀아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동네에서 생태 관련 활동을 해보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생태 수업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더라구요. (웃음) 옥수동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는 잘 돌아다니지도 않고, 청담동이나 한남동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하더라구요.

하여튼 옥수동이라는 동네는 과거랑 현재가 뒤섞여 있는 동네예요. 생태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곳이고요. 서울 한가운데인 데다, 20~30분 이내 거리에 한강, 남산, 서울숲이 있고, 매봉산, 응봉산, 쌍지문 등등 가볼 곳이 정말 많아요. 생태공간 목수를 열고 나서 동네의 자연환경을 둘러볼 수 있는 생태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진행했는데, 정작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시작 단계니까, 앞으로 차차 동네 자연과 주민들을 이어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생태공간 목수에서는 차도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유기농에 관심 있다 보니 생산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고 유기농으로 기른 차들만 선별해서 오방색 콘셉트로 다섯 가지 색깔 차로 계절별로 준비했어요. 나중에는 지역 농부들하고 연계해서 좋은 차를 소비자하고 연결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사서저도 오늘 이 자리를 위한 사전 인터뷰를 하려고 옥수동에 다녀왔는데요. 경의선 옥수역에서 생태공간 목수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재미있었어요. 길옆에 작은 가게들이 쪼로록 들어서 있어서 구경하는 맛도 있고요. 여러분도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봄가을에는 주말마다 생태 관련 강연을 진행하신다면서요? 최근에는 성석제 작가님 강연 소식도 들었는데요.

   

전은정올봄에 '생태공간 목수'를 열고 나서, 4월에는 '풀', 5월에는 '나무'를 주제로 주말마다 강연회를 열었어요. 유명한 작가님들 모시는 것도 좋지만, 사실 저희가 좀 더 잘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따로 있어요. 옥수동에 사는 사람들이랑 옥수동에 사는 풀과 나무를 관찰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요. 얼마 전에 시도해봤는데, 인기는 없었어요. (웃음) 사실 도시에도, 심지어 우리가 사는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도 풀과 나무가 엄청 많아요. 관심이 없을 뿐이죠. 계단 하나만 봐도 풀이 거의 30종 이상 있어요. 게다가 나무랑 풀은 계속 변하잖아요. 계절에 따라 자라고 씨를 맺고. 또 작년에 자란 풀이 이듬해에 가면 없을 때가 많아요. 지형이 계속 변해요. 골목골목을 돌면서 어떤 풀이 자라고 있고, 그것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생존하고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저희 딴에는 정말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하고 '옥수동 관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끝날 무렵에는 옥수동 나무 지도랑 풀 지도도 만들었어요. 근데 반응은 제일 저조해서 (웃음)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그래도 동네 관찰 프로그램은 가을에 또 진행하려고 해요. 봄에 봤던 풀이 가을에 가면 또 달라져 있겠죠.

도시 나무가 되게 재미있어요. 일반적으로 산에서 보는 나무랑 많이 다르죠. 도시 나무는 때때로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러면 나뭇잎이 평상시보다 세 배 이상 크는 경우가 있어요. 똑같은 느티나무인데 손바닥만큼 커다란 잎을 달고 있다면, 가지치기를 한 거예요. 나뭇잎이 광합성을 하잖아요. 에너지를 만드는 공장 같은 기관인데 그걸 인간들이 쳐내버리니까, 나무 입장에서는 에너지가 부족해지죠. 그래서 잎을 확 키우는 거예요, 살아야 되니까. 똑같은 수종인데도 산에 있는 나무보다 도시에 있는 나무의 잎이 훨씬 커지는 걸 관찰하면서 도시의 나무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사는지 알아보고 이야기해보면 재밌죠. 장세이 작가가 쓰고 목수책방에서 낸 책 중에 <서울 사는 나무>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가을에 프로그램 진행할 때는 홍보를 좀 더 잘해서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늘 왔다 갔다 하는 길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이름도 알고 어떻게 자라는지도 관찰하다 보면 동네에 훨씬 애정이 생길 테니까요.

 

 

사서사람들이 여유가 없어서 주변을 돌아보거나 작은 걸 보는 마음도 안 생기는 것 같아요. 뭔가 책 안 읽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네요.

 

 

전은정도시에 살면서도 관심만 가지면 굳이 멀리 안 나가도 생태적인 감수성을 충분히 기를 수 있어요. 근데 도시 사는 애들은 나무에 벌레 올라가는 걸 보고 죽여요. 제가 김포에 있는 '보름산미술관'에서도 어린이 생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자연을 많이 접하지 않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제압하려는 성향이 커요. 그런 아이 부모님들은 대개 벌레를 끔찍하게 여기거나, 흙이 묻으면 더러워졌다고 여기는 걸 많이 봤어요. 작은 벌레 하나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우리랑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도 하고 싶고, 생태 프로그램 같은 기회를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직접 전하고도 싶어요.

 

 

사서며칠 전이죠, 5월 27일에는 우포늪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전은정네. <우포늪, 걸어서>라는 책을 쓴 손남숙 시인을 모시고 독자들을 모집해서 우포늪 기행을 다녀왔어요. 손남숙 시인은 창녕에서 태어나서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인데요, 저희랑 <우포늪, 걸어서>를 내게 된 이야기가 재밌어요.

어느 날 우편으로 원고 하나가 왔어요. 출판사에는 책을 내고 싶은 작가들이 원고 투고를 종종 하는데요. 그중에서 99프로는 책으로 낼 수 없는 원고들이에요. 독자랑 뭔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자기 과시로만 가득한 원고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원고겠거니 했는데, 거의 완벽한 상태의 원고가 들어온 거예요. 목차부터 시작해서, 저자 스스로 이 책을 왜 썼고, 왜 목수책방 출판사에서 이 책이 나와야 되는지도 정확히 판단해서 보낸 거더라구요. 문장이 아주 정갈하고 오탈자나 비문이 거의 없는 데다, 원고를 깨끗하게 프린트까지 해서 정성스럽게 보내셨더라구요. 일단 작가 선생님의 원고 자체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도 선뜻 출간을 결정하지는 못했어요. 일단 우포늪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근데 생태 전문 출판사가 아니면 이런 좋은 원고가 어떻게 책으로 나올 수 있겠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작가 분을 만나뵙고 계약을 했어요. 많이 팔릴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우포늪을 다룬 책들하고는 다른 결의 책을 낼 수 있겠다 싶었죠. 지금까지 우포늪을 다룬 책들은 주로 자연과학 지식이 많이 들어간, 그래서 대중독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 많았어요. 근데 <우포늪, 걸어서>는 에세이기 때문에 우포늪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의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에요. 저자가 시인이기 때문에 표현력이 좋고, 저자가 10년 가까이 우포늪을 직접 다니며 찍은 사진도 매력 있죠. 그 사진 덕분에 우포늪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어요.

책을 내고 보니, 우포늪에 얽힌 이야기들을 책으로만 볼 게 아니라, 독자들을 모시고 저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포늪을 걸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기행 이벤트를 기획했어요. 마침 저희가 가기 바로 전날에 우포늪에 폭우가 쏟아졌어요. 늪은 배후습지라서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물이 범람하면서 수위가 갑자기 확 올라가요. 거의 버드나무 허리까지 물이 차요. 이번에 갔을 때 보니까 우포늪 물이 정말 신기해요. 내 앞에서 물이 다가오는 듯한, 되게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한번 범람을 하면 늪을 차지하고 있었던 식물들이 확 물갈이가 돼요. 전체가 한번 뒤집히는 거죠. 손남숙 작가님은 그걸 '혁명'이라고 표현하세요. 혁명 이후에 늪 생태계가 새롭게 질서를 되찾는 걸 보면서 짜릿함을 느꼈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늪은 홍수가 났을 때 봐야 제대로 보는 거래요. 지금은 가물어서 저희가 본 게 혁명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록색들이 올라와서 참 보기 좋더라구요.

근데 생태 관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안타까워요. 우포늪은 보존가치가 높아서 람사르 협약에도 지정된, 엄청난 관광자원이죠. 그래서 창녕시가 돈을 엄청 써요. 우포늪 관광자원화하는 일만이 아니라, 따오기 복원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어요. 예전에 창녕에 따오기가 살았는데 지금은 멸종됐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따오기 수백 마리를 들여와서 초록색 그물에 가두고 복원사업을 위해 기르고 있어요. 내년 경남 지사 은퇴하는 해를 기념해서 따오기를 방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고 들었는데요. 과연 외국에서 들여온 따오기가 우리나라 야생에서 잘 살 수 있을지는 물음표죠.

생태 관광 자원이라는 명목으로 우포늪을 막 광고하면서도, 사람들 편의만을 생각해서 생태를 망가뜨리고 자꾸 뭘 엄청 뜯어고치고 있어요. 우포늪이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하나가 쪽지벌인데요. 이번에 가서 보니까 작년에 갔을 때는 없던 출렁다리가 새로 생겼더라구요. 근데 안 예뻐요. 아름답고 예쁜 쪽지벌에 이상한 출렁다리가 하나 떡하니 놓여 있어요. 또 그걸 만들기 위해 가느다란 제방을 넓혔어요. 차가 다니기 좋게 깎아 놓은 거죠. 그러니까 당장 주변의 풀이 바뀌었어요. 이번에 갔을 때 제방 쪽으로 되게 아름다운 보라색, 노란색 꽃이 많이 피어 있어서 우리가 너무 예쁘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다 외래종이라고 해요. 무분별한 관광 자원화 사업 때문에 우리 것들은 싹 밀려나고 외래종에 자리를 넘겨주게 된 거죠. 외래종이 기본적으로 천적이 없기 때문에 생존력이 강하고 커요. 무작정 예쁘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었구나 싶었죠. 우포늪은 가시연꽃이라고, 아주 특이하고 멋있게 생긴 연꽃으로 유명한데, 작년에는 가시연꽃이 거의 안 피었대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꽃을 많이 심었는데 그게 어마무시하게 자라가지고 다른 것들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게 퍼진 거죠. 우포가 생태 보존 지역이어서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람 편의를 위한 시설들은 계속 들어서고 있어요. 사람들 다니기 좋게 다리 설치하고 자전거길 닦고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생태계가 계속 변하겠죠. 일본 니가타 현에 '오제습지'라고, 되게 유명한 습지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부분은 전체 습지의 2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대요. 엄청나게 넓은 습지 중 아주 일부분만, 그것도 가느다란 데크를 딱 하나만 만들어서 거기서만 볼 수 있게 해 놓은 거예요.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랑은 되게 다른 거죠. 창녕은 기본적으로 생태가 아니라 관광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창녕 지역에서는 관과 민, 환경운동하시는 분들이 맨날 싸워요. 환경운동하시는 분들은 새로운 거 만들지 마라, 관에서는 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방해하지 마라, 하면서 싸운다는 얘기를 들으면 조금 씁쓸해요. 앞으로는 저도 습지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의미 있는 출판물들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서파주에도 산남습지가 있는데요. 자유로랑 출판도시 생기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우포늪 생태 관광 이야기가 많이 와닿네요. 목수책방에서 낸 <흙의 학교>라는 책을 보면 자연에 사람이 상당히 개입하는 얘기가 나와요. 다만, 방금 대표님이 말씀하신 우포늪의 경우와는 굉장히 다른 방식의 개입이죠.

 

 

전은정네. <흙의 학교>를 쓴 기무라 아키노리도 원래는 비료 주고, 농약 치고 하는 관행 농법으로 사과를 키우던 농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산에 가서 깨달음을 얻어요. 산에 있는 식물은 인간이 별다른 걸 하지 않는데도 왜 그렇게 건강한가. 그러다가 흙에 주목했죠. 말랑말랑 푹신하고 파보면 좋은 냄새가 나는 산의 흙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흙을 연구하기 시작해요. 연구에 매달린 10년 동안 기무라 아키노리는 사과로 땡전 한 푼 못 벌었어요. 실패의 연속이었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사과와 흙에 매달린 인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에요. 그 사연이 오죽 신기했으면 일본에서 기무라 아키노리의 이야기를 그린 책, 영화, 드라마가 다 나왔겠어요. 저도 그 사람을 다룬 책 <기적의 사과>를 보고 '어떻게 이런 분이 있지?' 궁금했어요. 유기농 농사하는 분들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유기농으로 제일 성공하기 어려운 게 사과랑 배래요. 어찌어찌 성공한다 해도, 유기농 제재로 인정받은 천연 성분으로 만든 농약이나 비료를 안 쓸 수가 없대요.

농약이나 비료를 안 쓰면 관행 농법에 비해 손이 세 배 이상 간다고 해요. <흙의 학교>에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기무라 아키노리는 사과나무에 생긴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잡았어요. 농약을 안 쓰는 대신 인간이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흙의 학교>에서 소개하는 농법이 말만 자연농이지, 결국 인간이 아주 많이 개입하는 방식이에요. 기무라 아키노리한테도 영향을 준 가와구치 요시카즈와 후쿠오카 마사노부라고, 일본에서는 자연농으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들이 말하는 자연농은 정말 농사에 아무 개입도 안 하고 오로지 자연에 맡겨요. 풀이 자라면 자라는 대로, 벌레가 먹으면 먹는 대로 내버려두는 거죠. 그러니까 자연농으로 지은 사과에 벌레 먹은 자국이 없는 건 가짜예요. 근데 기무라 아키노리는 달랐어요. 개입을 해서 인간 입장에서 좋은 사과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책에서도 얘기하는데, 어쨌든 사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개입을 하는 거죠. 근데 개입을 하는 지점이 관행농법과는 다르죠. 비료나 농약을 주는 개입이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사과를 만들어내는 생태계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개입이죠. 그 일의 핵심이 '흙'이고요.

 

<흙의 학교>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자연을 거꾸로 보자'예요. 우리는 사과나무가 자라면 나무 형태가 어떤지, 이파리가 어떤지, 꽃은 피었는지, 제대로 열매를 맺었는지, 이런 걸 먼저 보잖아요. 근데 진짜 중요한 건 땅 밑, 뿌리에 있다는 거죠. 뿌리 끝에서 나무가 어떤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흙 속의 미생물이 어떻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흙 속 세계에서 '생명 연대'가 잘 이뤄져야만, 보이는 부분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해요. 그 말은 농사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어요. 기본이 중요하다는 얘기이고, 나 혼자만 잘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니까요. 생태적 지식의 핵심은 '관계'예요. 여러 가지 생명들이 다 이어져 있어서 서로 돕고 서로 기대서 산다는 걸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만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얘기해요. <흙의 학교>를 보면, 거꾸로 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물구나무를 섰을 때 보이는 바로 그곳, 땅을 보라고 얘기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에요.

 

 

* [북데이트X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3)으로 이어집니다.

*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