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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목수책방] 건강한 흙이 주는 선물 (3)

  목수책방의 책들

 

사서<흙의 학교>가 처음에는 농사 이야기여서 저랑은 별 관계 없을 줄 알았는데요. 읽다 보니 육아서처럼 와 닿았어요. 농부가 사과나무를 자식처럼 키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가령 이런 거죠. 나무에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뿌리를 멀리 뻗지 않아요. 스스로 막 뿌리를 뻗어서 멀리 있는 영양분까지 먹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가만있다가 주는 것만 받아먹는 식으로 의존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영양분이 넘쳐서 나무에 진딧물이 꼬여요. 자식한테 돈 많이 주면 일 안 하고 놀기만 하면서 부모에게 의존한다거나, 용돈 많이 주면 불량배들이 붙는다거나 하는 게 연상이 되면서, 농사가 자식 키우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은정진짜 맞는 얘기예요. 특히 아이 키우시니까 더 그런 게 보였을 텐데요. 농부는 기본적으로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는 사람과 달라요. 생산하는 것 중에서 서로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일정한 품질을 만들려면 비료나 농약을 쓸 수밖에 없죠. 유기농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사과, 블루베리 등등 과일을 내는 곳에서는 최상품, 소위 말해서 가장 몸값이 높은 열매를 선별하는 기계가 있어요. 크고 벌레 먹지 않은 것 등 규격에 따라 선별해서 가치를 매기는 거죠. 근데 거기서 '특상'으로 분류된 사과가 과연 진짜 특상이냐. 아니라는 거죠. 기본적으로 농부는 공장에서 하는 것과 달리 살아 있는 걸 다루기 때문에 100퍼센트 통제할 수 없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 해에 비가 많이 왔다거나 태풍이 불었다거나 너무 건조했다든가 벌레가 갑자기 생겼다거나. 환경에 따라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거든요. 그걸 다 미리 알아서 일일이 대처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농사가 어떻게 보면 벤처 산업 중 하나예요. 지난번에 어떤 농장에 갔다가 사과나무에 분홍색 리본이 달려 있어서 뭐냐고 물었더니, 이 나무에 작년에 사과 몇 알이 달렸고 병충해를 입었고 하는 등의 내력이 다 기록돼 있어요. 그래서 그다음 해에 천재지변이나 병해충 때문에 소출이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하면 수입을 보존해주는 보험에 들었다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다 통제할 수는 없죠. 이건 아이 키우는 일에 고스란히 적용돼요. 내 배 속에서 나왔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마 거의 없을걸요. 아이가 사회화가 되는 시기, 유치원에 다닌다거나 하는 식으로 바깥 활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 맺기를 시작할 때부터는 전쟁이 시작되죠. 근데 아이가 살아있는 존재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부모 머릿속에는 우리 아이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어떤 이미지가 있죠. 공부도 잘해야 되고 말도 잘 들어야 되고. 그렇게 부모가 만든 이미지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고 이것저것 가르치고, 아이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에도 아이를 억지로 떠밀죠.

<흙의 학교>에 보면 못난이 사과 이야기가 나와요. 수확한 사과를 분류하다 보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못난이 사과가 30퍼센트나 된대요. 유기농은 더할 수도 있고요. 그런 못난이 사과는 사과즙을 낸다거나 해서 판매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유기농 하시는 분들은 그런 2차 가공 사업을 병행해요. 하지만 그것도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요. 아무튼 구멍 나고 작고 못생긴 과일이나 채소는 식탁에 안 오르죠. 근데 보기 좋은 게 속까지 다 좋은 건 아니죠. 채소를 고를 때 너무 때깔이 좋은 것 위주로 고르는 건 건강을 위해서도, 생태계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너무 싼 것도 위험하죠.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잘 키우고 잘 자란 먹을거리를 고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 생산물이 과연 어느 땅에서 어떻게 길러졌을까 고민해보면 고를 때의 자세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최소한 이 책 <흙의 학교>를 읽으신 분들은 겉모습만 보지 마시고 작고 못났더라도 튼튼하게 잘 키운 채소나 과일을 알아보고 잘 소비해서 생태계 전체를 좋게 만드는 데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서<흙의 학교>에서 벌레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벌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든지, 벌레의 마음을 읽는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우리가 해충이라고 부르는 벌레, 그러니까 사과 이파리를 갉아먹는다거나 하는 벌레는 얼굴이 귀엽대요. 그리고 그 벌레를 잡아먹는 벌레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익충이잖아요. 그런 벌레들 얼굴은 무섭게 생겼대요. 말하자면 사과 잎 갉아먹는 벌레는 초식, 토끼 같은 애들이고 그 벌레를 먹는 벌레는 육식, 사자 같은 애들이죠. 그것도 '거꾸로 보기'의 일종인 것 같아요. 그리고 농부가 벌레의 마음을 본다는 게, 그 벌레가 지금쯤이면 어디다 알을 낳을지를 생각하면서 찾아본다고 하더라구요. 또 해충을 다 잡아버리면 익충이 먹을 게 없어지기 때문에 해충을 어느 정도 남겨 놓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전은정결국은 관계망 안에서 벌레를 보는 거예요. 농부가 사과에 못된 짓을 하는 벌레를 모조리 없애겠다는 게 아니라, 이 벌레가 왜 여기서 살아야만 하는가, 그 생명이 관계망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농부가 자꾸 생각한다는 거죠. 사과나무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생명들의 관계를 보고, 그 관계가 이루는 생태계가 어느 정도 스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농부의 역할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해요.

 

 

사서이 책을 쓴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는 현자 같은 느낌이에요. 농사랑 흙 이야기를 힐아버지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이 편안하게 들려줘서 쉽고 재미있었어요.

농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출판 생태계도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책을 읽는 독자, 유통하는 서점, 이들이 서로 관계를 잘 맺고 연계돼야 출판 생태계가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전은정그 생태계가 건강한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지표 중 제일 먼저 보는 게 종 다양성이라고 해요. 얼마나 다양한 게 들어 있나. 생태계라는 말이 결국 여러 생명이 관계를 맺으면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의미인데요. 관계를 만드는 생명이 다양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생존할 수가 없어요. 가령 밭에서 감자를 키우면 감자한테 필요한 영양소만 땅에서 계속 뽑아먹으니까 나중에 그 땅에선 감자가 안 나요. 그러니까 다른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이듬해에는 다른 작물을 심는다거나, 감자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잡초를 심었다가 흙을 갈아엎어서 퇴비를 만든다거나 하는 작업을 농부들이 하죠.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곳이나 제가 몸담고 있는 출판계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저희 같은 1인 출판사들이 출판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조금은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출판사들마다 이익을 내야 하니까 유명한 작가, 팔릴 것 같은 책에 집중하거든요. 근데 그런 책들은 대개 명성과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라 큰 출판사들이 내고, 사실 저희같이 작은 출판사에서는 아예 손을 댈 엄두도 못 내죠. 그 대신 숨은 저자를 발굴한다든가, 작지만 소개해서 의미 있는 소재들을 열심히 찾죠. 그러다 보면 다양성 확보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출판 유통에서는 작은 서점이 1인 출판사와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봐요. 큰 서점은 아무래도 베스트셀러, 큰 출판사위주로 책을 소개할 수밖에 없는데요. 작은 서점은 큰 서점과는 또 다른 기준으로 책을 선별하고 진열해요. 그래서 저희같이 작은 출판사의 책이 작은 서점에서는 오랫동안 매대를 지키기도 해요. 큰 서점은 큰 서점대로, 작은 서점은 또 그곳만의 방식으로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 출판 생태계가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다고 봐요. 목수책방은 작은 서점 10곳 이상과 직접 거래하고 있는데요. <흙의 학교>나 <식물 이야기 사전> 같은 책은 특히 작은 서점에서 인기가 많아요. 제가 얼마 전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인 모임에서 주최한 강연을 들었는데요. 어떤 출판 영업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일본에서는 신간이 나오면 전국 도서관에서 7천부를 소화한대요. 초판을 1500부 정도 찍는 저희 입장에 보면 초판 7천부는 꿈같은 얘기죠. 그 정도 팔린다는 보장만 있으면, 그냥 내고 싶은 책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출판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안 팔릴 것 같다 싶고 자본이 넉넉지 않으면 못 내거든요. 근데 일본 정도의 수준이면 도서관에서 소화해주는 판매 부수만으로도 제작비 정도는 웬만큼 보장이 되니까 더 다양한 책이 나올 수 있겠구나 싶어서 몹시 부러웠어요. 일본도 독서 인구가 굉장히 많이 줄었다고는 해요. 특히 일본 출판계가 만화랑 잡지로 먹고사는데, 그 두 분야가 굉장히 급감했다고 해요. 독서 인구가가 줄고 출판 시장이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긴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필요할 거고,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여러 좋은 책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되면 좋겠어요. 흙에 미생물이 다양하게 많아야 생태계가 유지되듯이요.

 

 

사서작은 서점에서 책을 구매해주시면 출판사도 다양한 책을 낼 수 있고, 도서관을 자주 찾아주시면 도서관도 다양한 책을 구비해서 여러분이 이용하시는 데 더 많은 혜택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있는 곳을 많이 찾아주시고, 주변에 도서관 안 다니시는 분들 있으면 데려와주시고 해 주세요. (웃음)

 

 

전은정읽고 싶은 책을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주시는 것도 출판사들에는 도움이 되게 많이 돼요.

 

 

사서발견하기 쉽지 않은 책들을 먼저 발견하신 분들이 주변 분들에게 소개하시는 것도 출판 생태계에는 좋은 일이에요. 묻혀 있는 좋은 책이 있다면 혼자만 알고 계시지 말고 널리 알려주세요.

오늘 북데이트 마칠 시간이에요. 사실 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는 목수책방 신간을 소개하려고 계획했었는데요. 아쉽게도 뜻밖에 사정이 생겨서 조금 미뤄졌다고 들었어요.

 

 

전은정네. 일본책을 하나 번역해서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요. 일본 출판사랑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과정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출간 일정도 미루게 됐어요. 일본 책은 출간하기 전에 번역본의 표지와 판권지를 일본 출판사에 미리 보여주고 확인을 받게 돼 있는데, 그게 예상과 달리 2주 이상 걸렸어요. 마침표 하나 고쳐서 보내면 쉼표를 찍어라, 쉼표를 고쳤더니 괄호를 쳐라 등등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원래 오늘 이 자리에 완성한 책을 갖고 와서 짠 하고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아쉽습니다.

어쨌든 오늘 인쇄를 하는 목수책방 아홉 번째 책은 <과학 이전의 마음>이에요. 이 책의 저자는 나카야 우키치로라고, 일본 근대의 유명한 물리학자인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세계 최초로 인공으로 만든 사람이에요. 근대 초기 지식인들은 문과적인 능력과 이과적인 능력의 밸런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유명한 과학자들이 글도 참 잘 썼죠. 나카야 우키치로는 데라다 도라히코라고, 굉장히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의 제자예요. 그 밑에서 학문을 익히면서 글쓰기도 배운 덕분에 좋은 수필을 많이 남겼어요.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일본의 유명한 생물학자가 나카야 우키치로의 수필 중에서 좋은 글들을 엮어서 낸 책이 <과학 이전의 마음>이에요. 이분이 남긴 글에서 가장 유명한 게 "눈은 하늘에서 보내는 편지다."예요. 아주 시적인 문장인데, 여기에는 눈을 보면 대기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요. 시적인 문장에 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거죠. 물리학자가 '눈'이라는 대상을 시인의 눈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생각해서 완성한 문장이에요. 눈이라는 자연현상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과학자의 마음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 결정에 대한 경외심, 어떻게 자연은 이런 완벽한 걸 만들어낼까 하는 것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어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진정한 과학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해요. 또 근대에 서양 문물, 서양 과학의 혜택을 받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전통에 대해 고민도 엿볼 수 있고, 과학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탐구하는 대목도 이 책에 담겨 있어요. 글이 굉장히 논리정연하고 과학자답게 깔끔하면서도 시적인 감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책 만들면서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요, 독자 여러분은 또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사서저같이 문과 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이 이과 주제에 새로 접근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목수책방 신간 <과학 이전의 마음>도 많이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하도서관 세 번째 북데이트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목수책방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5월에는 인문예술 분야의 책을 내는 소동출판사를 모실 예정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북데이트에 함께 해주신 '목수책방' 출판사 전은정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 문화가 있는 날 북데이트는 사전 녹취 허락을 받았으며 녹취록은 땅콩문고에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북데이트는 지역독서문화연대협약서점(땅콩문고, 발전소책방.5)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