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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소동출판사] 머무르기 보다는 떠나기(2)

[북데이트X소동출판사] 머무르기 보다는 떠나기(1)에서 이어집니다


<작품의 고향>에 나오는 황재형 작가를 설명 중인 소동출판사의 김남기 대표


소동 . <세상의 용도>는 스위스의 니콜라 부비에라는 작가하고 티에르 베르네라는 화가가, 지금은 없어져버린 옛날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리스, 터키,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여행한 기록이에요


사서 글을 쓴 니콜라 부비에가 굉장히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요. 우리나라에는 이 책 한 권만 번역돼서 나왔어요. 니콜라 부비에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소동 니콜라 부비에는 저도 이 책을 만들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예요. 사실 이 책은 니콜라 부비에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로 내용이 굉장히 좋아서 계약하게 됐어요. 이 책이 유럽에서는 여행 문학의 고전으로 읽히고, 작가 니콜라 부비에도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이더라구요. 프랑스에서는 '생말로 북페어'라고, 여행책과 여행영화를 같이 전시하고 상영하는 데서 2006년도에 '니콜라 부비에 상'을 제정했는데, 그해에 가장 뛰어난 여행작가에게 주는 상이에요. 니콜라 부비에 약력이 재밌는데요. 아버지는 사서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못하는 주부였대요. 아버지가 사서여서, 어렸을 때 집에 헤르만 헤세가 놀러 오고 그랬답니다. (웃음) 어쨌든 집안이 굉장히 엄격해서, 억압하는 가족에 대해 니콜라 부비에가 반감을 가졌다는 대목을 다른 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각국에서 출간된 <세상의 용도>

 

 

사서 그래서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저자 소개를 보니 '르네상스인'이라고도 돼 있던데요.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는 사람, 말하자면 천재였던 거죠?

 

 

소동 맞아요. 여행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하고 사진가에 고문서학자이기도 하고요. 이미 열일곱살 때 대학 졸업 시험을 쳤다고 하던데요. 제 생각에 그 당시에 좋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전인적인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세상의 용도>에 소개된 여행을 떠났을 때가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살 때인데, 그때 이미 학위 논문까지 제출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사서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세상의 용도>는 책 자체도 되게 멋지게 나왔어요. 책이 예쁘더라구요. 처음에 봤을 때 표지 종이의 질감이 굉장히 멋지고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책을 펼쳐보고 더 깜짝 놀랐어요. 친절한 주석에 지도까지, 여러 가지로 고생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책 만든 일화를 좀 소개해주시겠어요?

 

부록으로 별도 제작한 세계지도  사진ⓒ땅콩문고

 

 

소동 이 책을 만들 때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제가 한국어판 내야 될 시한을 넘겨가지고 원서 저작권사와 저작권 재계약까지 해야 했죠. 이 책은 특히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강하게 일었거든요. 실제로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책이에요.

이 책 저자들이 1953년에 여행을 했죠. 자그레브라고, 지금은 크로아티아 수도인데요, 거기서 출발을 해서 터키를 지나 이란을 지나 밑으로 내려와서 잠깐 파키스탄을 들른 다음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죠. 원래 목적지는 인도였습니다. 근데 인도를 가기 전에 니콜라 부비에하고 티에리 베르네가 헤어져요. 티에리 베르네가 난 도저히 못 참겠다, 이게 뭐냐, 나 결혼해야겠다고 하고 떠나요. 그러고 나서 니콜라 부비에 혼자서 아프가니스탄에 가는데, 카프카스 산맥이 너무 높으니까 못 넘어가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가기 직전에 카이바르 고개라는 데서 이 책은 끝이 납니다. <세상의 용도>1953년도에서 1954년도까지의 여정을 그렸는데요, 니콜라 부비에는 1955년에 다시 혼자 인도에 갑니다. 그건 나중에 따로 책으로 묶여 나왔어요.

니콜라 부비에랑 티에리 베르네는 피아트 토플리노라는, 두 명이 탈 수 있는 소형차를 가지고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을 했어요. 사실 두 사람의 여행 이야기가 다른 여행서와 굉장히 다른 지점이 뭐냐면, 둘은 여행을 하려고 떠난 게 아니고 가서 살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각 지역에 대해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어요. 풍습도 공부하고 음악도 수집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 돈을 벌었어요. 작가는 글을 쓰고, 화가는 그림을 팔고, 현지 학생들한테 프랑스어도 가르치면서 돈을 벌죠.

저는 이 책에서 집시 음악 부분이 신나고 좋더라고요. 옛날 유고슬라비아, 지금은 마케도니아인데, 음악이 도처에 있는 느낌이 우리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우리도 음주가무 좋아하잖아요. 실제로 옛날 유고 영화 보면 우리랑 비슷한 것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여행한 코스를 보면 분쟁 지역이 많아요. 유고슬라비아 발칸 반도도 분쟁 지역이고, 터키에서도 분쟁 지역이 많거든요. 아제르바이잔도 분쟁지역이고요. 여기에서 말하는 아제르바이잔은 나라를 지칭한다기보다는 그 밑에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의 아제르바이잔이에요. 그리고 알다시피 아프가니스탄도 굉장한 분쟁 지역이죠. 우리는 사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니콜라 부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상세히 말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니콜라 부비에가 티에리 베르네랑 헤어지고 나서 아프가니스탄의 '박트리아'라는 곳에 혼자 가는데요, 거기가 고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에요. 어쨌든 박트리아에서의 여정을 전할 때, 글에 고독감이 흘러넘쳐요. 아마도 친구랑 헤어져 혼자 여행한 탓인 것 같아요.

 

 

사서  유고슬라비아에서 시작해서 유럽과 아시아가 갈라지는 보스포로스 해협, 아프가니스탄, 쿠르디스탄, 아제르바이잔 등등 작가들이 여행한 지역이 저희에게는 익숙지 않은 곳이잖아요. 그래서 지명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가면서 읽기도 했는데요. 책 만들 때 지명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구글 지도에서 이란을 검색한 화면

 

소동 이 책 만들면서 제일 신경 썼던 게, 1953년도에 했던 여행을 어떻게 지금으로 가져오느냐였어요. 작가들이 여행을 시작한 1953년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였던 나라가 제가 책을 편집할 때는 6개 나라로 쪼개져 있었고요, 지금은 또 코소보가 독립해서 7개 나라가 됐어요. 책 편집하면서 우리의 한계도 깨달았죠. 우리가 서남아시아의 역사나 문화를 너무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지명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한글 외래어표기법이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원서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만, 본문에 나오는 지명들은 저마다 지역에 맞는 언어에 맞춰 표기해야 해서 원어를 찾고 각 맞는 표기법에 맞추느라 되게 힘들었어요. 독자가 읽을 때는 지명이나 위치를 쫓아가느라 애먹지 않도록 원서에는 없던 지도를 부록으로 넣었고요, 낯선 지명마다 편집자 주를 넣었습니다.



 

사서  그렇게 수고해주신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멋진 책을 좀 더 쉽게 만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은 책장 어디를 펼쳐도 좋은 문장이 많아요. 성서처럼 머리맡에 두고서, 여행이 고플 떄, 마음이 허할 때 한번씩 꺼내보면 좋은 책이라고 대표님께서도 소개해주셨었죠.

 

 

소동 . 그런 느낌을 담아서 디자인도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사서  <세상의 용도>에 담긴 좋은 문장들을 오늘 오신 분들하고 나누고 싶어서, 김남기 대표님이 좋은 문장들을 꼽아주셨는데요. 잠시 함께 읽어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대표님께서 먼저 한 대목 읽어주세요.

 

 

소동 저는 본문 14쪽을 읽어보겠습니다.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트라브니크는 보스니아 한가운데의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였다. 티에리는 거기서 출발해, 베오그라드를 향해 올라가 세르비아화가협회 초청으로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다. 나는 새로 수리한 고물 피아트 자동차에 짐을 싣고 베오그라드에서 7월 말에 티에리와 만나, 터키와 이란, 인도,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먼 곳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2년의 시간이, 그리고 넉 달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계획 자체는 확실치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선 떠나고 보는 것이다.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에 나는 양탄자 위에 큰댓자로 누워 세계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절로 솟아났다. 바나트나 카스피 해, 카슈미르 같은 지역과 그곳의 음악, 거기서 마주치게 될 눈길,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생각들을 꿈꾸었다.이 억누르기 힘든 욕망, 그걸 뭐라 불러야 할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무엇인가가 점점 더 커지다가 어느 날인가 닻줄이 풀리면, 반드시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떠나고 보는 것이다.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거기서 조금 내려가서요. 15쪽 아래쪽까지 마저 읽겠습니다.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 쓴 나는, 벌레들이 반쯤 갉아먹은 고추 하나를 오른손에 들고 가슴속에서 그날 하루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공기를 몇 리터씩 들이켰다. 고양이가 아홉 번 산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나도 내 두 번째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사서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세상의 용도>를 사서 읽으신 분들은 이 문장에 분명히 밑줄 치셨을 것 같아요.

함께 더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기, 북데이트에 두 번째로 오신 박채란 작가님께 부탁드릴게요. 읽고 싶으신 부분 펼쳐서 읽으셔도 되고요, 여기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들이 같이 읽으려고 소동 출판사에서 표시해온 부분이니까 거기서 골라주셔도 되고요.

 

 

청중1(박채란) 여기, 164쪽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두려움이라는 주제에 관해 짧게 한마디 하도록 허락해주시기를 바란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고 아무리 빵을 씹어도 안 넘어가고 목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 지독하게 피곤하거나, 너무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미친 듯이 열광했다가 일순 낙담하는 그 순간, 두려움은 마치 차가운 물에 샤워를 했을 때처럼 길을 돌아서는 당신을 덮친다. 다음 달에 대한 두려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건 뭐든지 다 위협하는 개들, 조약돌을 주어들고 당신에게 다가오는 방랑자들, 심지어는 이전 숙박지에서 빌린 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속셈을 감추고 있던 난폭하고 못된 인간.”

대부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침을 꿀꺽 한번 삼키는 걸로 충분하다. 그래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거리로 접어들거나, 그 사원에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다음 날이 되면 당신은 낭만적인 기분으로 당신 자신을 나무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이 같은 불안의 최소한 절반은 심각한 위험에 대한 본능이 발휘된 것이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낭만적이고 목소리 크고 성격 화끈하고 누가 뭐래든 막무가내인 자들이 위험을 무릅써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다가 영영 소식이 끊긴 장소가 아나톨리아와 카이바르 고개 사이에 여러 곳 있다. 강도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산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작고 가난한 마을이나, 빵 한 개나 닭 한 마리를 놓고 벌이는 짜증나는 흥정이면 충분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당신의 몸짓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당신의 눈길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그러다가 몽둥이 여섯 개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순간이 금방 온다. 그러면 당신이 인간애에 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몽둥이는 내려쳐진다."

 

 

사서  감사합니다. 한 분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동 84쪽이나 86쪽 어떨까요.

 

 

청중 2 "우리에게는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돈의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차 지붕은 열고 엑셀러레이터는 살짝 당겨놓았으며 좌석 등받이에 걸터앉아 한쪽 발은 핸들 위에 올려놓은 채 시속 20킬로로 느릿느릿 길을 갔다. 경치는 한결같이 빼어났고, 그곳에 떠 있는 보름달은 휘영청 밝고 아름다웠다. 반딧불, 터키식 가죽신발을 신고 도로를 보수하는 인부들, 세 그루의 포플러나무 아래서 벌어지는 소박한 동네 무도회, 뱃사공이 일으킬 필요조차 없이 고요히 흐르는 강, 자기가 클랙슨을 울려놓고 화들짝 놀랄 만큼 깊고 깊은 침묵.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담배를 너무 피워댄 데다가 배도 고팠다. 식품점 문이 아직 잠겨 있기에 트렁크의 연장상자 밑바닥에서 찾아낸 빵 조각을 씹으며 그곳을 지나쳐갔다. 여덟시쯤 되면 햇빛이 치명적일 만큼 쨍쨍 내리쬐기 시작하는데, 작은 마을을 지나갈 때는 경찰모를 쓰고 자동차 바로 앞에서 서툴게 껑충껑충 뛰며 도로를 횡단하려는 노인들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잘 살펴야만 했다. 정오쯤 되면 브레이크와 엔진, 그리고 우리의 두개골이 열을 받아 뜨끈뜨끈해진다. 풍경이 아무리 황량해도 항상 작은 버드나무 숲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아래서 깍지 낀 두 손을 베개 삼아 잠을 잘 수가 있다. 혹은 여관이 있다. 부풀어오른 벽지, 찢어진 커튼, 지하실에 저장해놓은 것처럼 차갑고 독한 양파 냄새 속에서 파리들이 윙윙거리는 방을 상상해보라. 하루가 여기서 그 중심을 발견한다."

 

 

사서  , 감사합니다. 어떠세요. 한 분 더 할까요? 소동출판사 남규조 대표님 목소리도 듣고 싶어요. 북소리합창단 활동하고 계셔서 목소리가 굉장히 좋으시거든요. 부탁드립니다.

 

 

남규조 86쪽 읽겠습니다.

침묵 속에서 하루가 끝나간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실컷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엔진 소리와 스쳐가는 풍경에 실려와서 당신의 몸을 관통하고 당신의 머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인 생각은 당신을 떠난다. 반대로 다른 생각이 새로 정리되어 강 밑바닥의 조약돌처럼 당신 가슴속에 자리를 잡는다. 개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도로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한다. 도로가 제 할일을 다 하여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인도 끝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죽음까지 그렇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상상력과 집중력만 발휘하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도 여행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기꺼이 믿는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구체적으로 공간 속을 옮겨 다니며 움직이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세계는 약한 사람들을 위해 넓게 펼쳐져 그들을 받쳐준다. 어느 날 밤 마케도니아로 가는 도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왼쪽에 떠 있는 달과 오른쪽에서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모라바 강으로 세계가 이루어지고, 앞으로 3주일 동안 살 마을을 지평선 뒤쪽으로 찾으러 갈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내가 그런 것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사서  고맙습니다. 이것만 읽으시고도 여행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직업병처럼 책에 줄긋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제 책에도 잘 안 그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줄그으시는 분들 때문에 사서들이 애를 먹거든요. (웃음) 근데 이 책은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아서 저절로 줄을 치면서 보게 되더라구요.

오늘 김남기 대표님께서 <세상의 용도> 소개하시면서, 좋은 사진 자료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제가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니콜라 부비에가 찍은 사진들이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오늘 돌아가셔서 여러분도 꼭 한번 검색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니콜라 부비에가 여행을 다닌 지역들도 한번씩 검색해보니까 재미있는 자료가 많더라구요. 검색하다가 이란에 사시는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랑 그 지역 생활정보가 잘 정리된 인터넷 카페도 발견했어요. 그런 정보를 알고 나니 확실히 글로만 읽을 때보다 책의 내용이 훨씬 풍성하게 다가왔어요. 이 책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가기 쉬운 나라는 아니죠. 대표님께서는 해외여행 중에 인상에 남은 여행이 있으신가요?

 

니콜라 부비에(Nicolas Bouvier)의 사진


소동
 제가 처음 간 해외여행이 히말라야 트레킹이었어요. 진짜 멋모르고 갔어요. 가기 몇 달 전에 후배가 저한테 히말라야 트래킹 가면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하더라구요.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한참 뒤에 후배가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낸 여행사에 물어봤죠.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고 싶은데 평소에 운동을 전혀 안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갈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저한테 3시간 쇼핑하면서 다닐 수 있냐고 묻더라구요. 그건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러면 히말라야 트래킹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갔어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코스였는데, 첫날부터 매일 밤마다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길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죠. 출발하기 전에 미리 듣기로, 하루에 500미터씩 고도를 올린다고 하더라구요.북한산이 800미터쯤 되니까, 하루에 500미터 못 가겠나 생각했죠. 근데 500미터 고도를 직선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니까 거리로 따지면 엄청 긴 거예요. 완전히 속은 기분이었어요. 특히 처음 3일이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밤마다 나를 원망했어요. 

마지막 이틀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네팔에서는 신이 인간과 굉장히 가까이 있어요. 우리는 절에 가면 부처님이 높은 단 위에 올라가 있고, 교회에서도 예수님 상은 만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네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굉장히 큰 불상조차 사람들이 던진 꽃하고 물감으로 엉망인 거예요.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여기 사람들은 잘 보존은 못 할망정 왜 저러는지 가이드한테 물어봤더니, 신은 꽃을 좋아한대요. 그 말이 잊히지 않아요. 네팔 사람들 마음이 신이랑 굉장히 가까이 있는 게 좋았어요. 그래도 트레킹할 때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히말라야 트레킹 하나 봐라 하고 돌아왔어요. 근데 돌아오자마자 너무 그리운 거예요. 몇 개월 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힐 만큼, 계속 그리워했어요. 아마 제가 여행 책을 내게 된 것도 네팔에 다녀온 영향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3부로 이어집니다.

* 녹취원고 작성은 땅콩문고에서 도움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