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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북데이트X창비(어린이)] 어른, 다시 동화를 읽다(1)


2018 교하도서관 문화가 있는 날_북데이트 with 창비(어린이)


"어른, 다시 동화를 읽다"


일시: 2018년 3월 29일 (목) 10:30~12:00


장소: 파주 교하도서관 3층 브라우징룸


초대: '창비(어린이)' 어린이출판부서장 천지현 선생님


사회: 교하도서관 서다정 사서



안녕하세요. 3월의 북데이트를 진행하게 된 교하도서관 서다정 사서입니다.

 

주제가 ‘어른, 다시 동화를 읽다’인데요. 여러분은 동화 자주 읽으시나요? 제가 도서관 내 그림책읽기모임 ‘책끌림’을 하면서 어른들이 아동도서를 읽을 때의 효과를 느꼈는데요. 어린이책은 무언가 어른인 우리가 당연시 여겼지만 중요하고 소중한 주제들을 다시 인지하도록 해주는데요. 예를 들면 생활습관에 관한 책이나 친구 관계, 자연 등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하나 잊고 사는 것들이죠.

오늘을 위해 창비 출판사의 주제 도서인 『사과나무밭 달님』을 읽고 왔어요.

일제강점기 시대의 빈민층의 삶을 각기계층의 사람들과 동물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지요.

 

문둥병에 걸려 10년 만에 집에 몰래 나타나 아이들의 커져 버린 신발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저씨 등……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역사적 사실로만 접하는 것보다 이런 사연들을 읽다 보니 좀 더 ‘전쟁의 아픔’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전쟁의 시기를 겪지 않았기에 이런 아동문학이 아니면 와닿지 않을 내용이죠. 간접체험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할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동문학의 힘 아닐까요?

 

오늘 아동문학의 시초인 창비 어린이책의 출판 이야기와 편집자로서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창비 어린이책이 작년에 40주년을 맞이했다네요.

창비의 어린이출판부서장님인 천지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짝짝짝)




 

-사서: 안녕하세요~

 

-창비: 네, 안녕하세요. 창비어린이 어린이출판부서장인 천지현입니다.

 

-사서: 부서장이면서 편집자의 역할을 하시잖아요. ‘편집자’하면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하거든요. 편집자라하면 작가가 쓴 원고의 내용을 검토, 내용의 손상 없이 원고의 교정, 교열, 윤문 작업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요. 부서장님께선 편집자가 된 계기가 있나요?

 

천지현님이 편집자가 된 이유?

-창비: 저는 대학에서 사학과 정치외교를 전공했고 특수부전공으로 교육학을 했어요. 제 고향이 부산인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하는데 일단 돈 아깝지(?) 않게 많이 배우자, 하는 욕심이 좀 컸습니다. 저는 역사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공도 평소의 관심사에 따라 정하게 되었고요. 중고등학교 때 많이 따랐던 선생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책들을 돌이켜 보면, 『장길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같은 책들이었습니다. 사회 참여적인 성격을 꽤 가지고 있는 책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모든 정보와 지식을 얻게 되는 매체가 무엇이었나, 하면 그건 바로 책이었어요. 문학 작품이던 비문학 작품이던 간에 책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책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책 만드는 작업의 일원이 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편집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서: 제 예상으론 마냥 문학소녀일 것만 같았는데, 타전공이셨네요.

 

-창비: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의 대학 때 전공이 모두 국문학일 것이라는 짐작은 금물입니다! 생물학 전공자도 있고, 금속공학 전공한 친구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타 전공자가 훨씬 더 많아요. (웃음)

 

-사서: 그래서 되레 책 출판에 있어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을 거 같아요. 책을 만드는 것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창비: 날것, 흩어진 이야기와 지식의 조각들을 이어 짜는 기쁨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죠. 한마디로 한다면 창조성인 것 같아요.

 

-사서: 음…… 저자가 먼저 창조하고 편집자가 다듬는 순서로 이루어지지 않나요?

 

-창비: 음, 물론 그렇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이나 올해 출간된 『아홉 살 함께 사전』 같은 책은 편집자가 먼저 어떤 책을 만들겠다, 기획을 하고 이 생각을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할 저자를 찾았거든요. 주로 논픽션 책들이 그런 편이죠. 아무튼 편집자, 저자 중 누가 먼저냐의 순서는 바뀌기도 합니다. 누가 먼저이든 지금의 세상에 없는 이야기,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사서: 아, 그런 경우도 있네요. 그럼 편집자의 역할과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창비: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편집자 일을 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저 역시 계속 다듬어져 나가는 입장이라 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우선 걱정부터 앞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려 본다면, 은근과 끈기(?), 그리고 세심함이 아닐까 싶어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꽤나 지난하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요. 책이 출간되고 나면 소소한 오탈자 수정이 아니고서야 전면 수정이 어려워요. 그러니 바쁜 중에서도 차분차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야 해요. 그래서 편집자들은 조사 하나 바꾸는 것에도 상당히 고민해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요.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의 우리 출판물들을 보면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오탈자가 적은 편이라고 해요. 지금과는 달리 중앙 정부에서 책의 출간을 관장했는데, 오늘날의 본문 편집자 역할을 했던 검서관은 오탈자가 한 번 발생할 때마다 태형을 당하고, 이것이 반복되면 감봉은 물론이고 삭탈관직까지 당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혹하죠.

아울러 작가를 포함해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고, 맞다/아니다, 좋다/나쁘다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지, 용기도 필요합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 그리고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사서: 제가 처음 창비에 저희 도서관 소식지에 들어갈 강의 내용을 보내드렸거든요. 짧은 글임에도 편집해서 보내 주시더라고요. 조금 놀랐어요. “출판사라서 역시 다르구나“ 하고요.

 

-사서: 마치 예술 작품을 하나하나 세상에 내놓는 거 같아요. 이런 편집자와 저자, 출판사의 노고를 통해, 

창비어린이책이 작년에 40주년을 맞이했어요. 아동문학의 산실인 이곳의 이야기를 대략 10년 주기로 간략하게 들어볼게요.

 





-창비: 창비 어린이책은 1977년에 처음 펴내기 시작했어요. 창비 어린이책을 보고 자란 아이가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다시 창비 어린이책을 권하고, 혹은 작가가 되어 다음 세대 독자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또 창비에 입사해 새로운 어린이책을 만들어 갈 만큼의 시간이 흐른 거죠.

 

창비는 1966년에 계간 잡지 『창작과비평』을 창간했고, 1974년부터 단행본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3년 만인 1977년 2월 20일, 정가 750원의 소박한 만듦새로 이원수 동화집 『꼬마 옥이』, 이주홍 동화집 『못나도 울 엄마』, 마해송 동화집 『사슴과 사냥개』, 이상 세 권의 책이 ‘창비아동문고’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지요. 당시 발행인인 백낙청 선생님의 간행사를 보면 “사랑하는 아들, 딸, 동생 들에게 마음 놓고 권할 수 있고 큰 부담 없이 사 줄 수 있으며 어른들 스스로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겠다고 하신 걸 확인할 수 있어요. 고가의 전집이나 부실한 단행본 어린이책밖에 없던 시절에 값싸고 좋은 낱권의 책 출간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고 할까요.



1980년대 들어서는 이오덕 동시집 『개구리 울던 마을』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계층 간 갈등이나 대립 의식을 고취하는) 불온 내용을 담고 있다며 정부 당국의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출간된 『몽실 언니』 같은 작품은 판금 압력 속에서 도리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요. 흔히 나라의 내일을 걸머진 어린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어릴 때 읽은 한 편의 이야기가 사람의 일생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하고요. 얼마 전 한강 선생님이 『소년이 온다』와 관련한 강연에서 어릴 때 읽었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선생님의 작품과 연관지어 이야기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관련 내용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추천사로 편집해 실려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처럼 어릴 적 읽은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른이 된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이야기죠. 당시 선배들은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1996년 창비 어린이책은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제도를 신설하며 한 단계 도약을 모색합니다. 

1997년 채인선 동화집 『전봇대 아저씨』(창작 부문)을 시작으로, 창비 어린이책의 현실주의 정신을 잇는 『문제아』 『괭이부리말 아이들』 『짜장면 불어요!』 등과 같은 화제작뿐 아니라, 『초정리 편지』 『기찻길 옆 동네』 『해를 삼킨 아이들』처럼 역사를 통해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동화들, 『엄마 사용법』 『기호 3번 안석뽕』과 같은 근작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시도와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계속해서 발굴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비의 시도와 노력이 국내 어린이문학 시장에 활기를 주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창작 부문과 함께 신설된 기획 부문을 통해 창비는 어린이문학뿐만 아니라 논픽션, 교양서의 영역으로까지 어린이책의 영역을 확장해 나갑니다. 공모를 통해 발굴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진이의 농장 일기』 『과학자와 놀자!』와 같은 책은 ‘수학과 친해지는 책’ ‘과학과 친해지는 책’ ‘사회와 친해지는 책’ ‘호기심 그림책’ 등 다양하고 풍성한 지식 정보책의 출간으로 이어지는 데 디딤돌이 되었어요.

 

1990년대 말, 2000년대부터는 어린이책 시장이 급성장하고 다양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창비 어린이책 역시 기획집단 달리와 함께 시그림책을 펴내면서 그림책 시장에 뛰어들어 출판 기획의 영역을 더욱더 넓히게 됩니다. 시가 그림책이 되는 건 당시에는 전무했던 완전 새로운 기획이었어요. 2003년 권윤덕 선생님의 『시리동동 거미동동』을 시작으로 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의 『강아지와 염소 새끼』까지 완간을 했고, 해외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작업한 『마음의 집』과 『눈』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 상 대상을 연달아 수상하는 쾌거를 가져왔어요.

 

창비 어린이책의 출발이자 중심이라 할 창비아동문고를 통해서는 뛰어난 작가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배출한 김기정 김남중 배유안 유은실 이현 선생님은 어느새 중견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2010년대에는 진형민 김태호 송미경 선생님 등이 활기를 불어넣고 계시지요.

2012년에는 창비아동문고 14번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 언니』가 1984년 초판 발행 이후 28년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2013년에는 창비아동문고 183번 김중미 소년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국내 어린이책으로는 처음으로 200만 부를 넘어서는 뿌듯한 성취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사서: 창비 40주년 맞이하여 수많은 아동문고중에 딱 5권이 창비 어린이책 40주년 기념 특별판 세트로 나왔어요. 1970~2010년대 시대별 창비아동문고 대표작들로 구성되었고요. 1970년대 대표작이 권정생의 『사과나무 밭 달님』, 1980년대가 정채봉의 『오세암』, 1990년대가 황선미의 『샘마을 몽당깨비』, 2000년대 배유안의 『초정리 편지』, 2010년대 진형민의 『기호 3번 안석뽕』인데요, 많고 많은 책 중 저 5권이 선정된 이유가 있나요?


                                    

 

-창비: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인기가 많았던 책이자 각 연대별로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고려해 골랐어요. 


권정생 문학의 힘은?

-사서: 그중 이번 북데이트 주제도서의 저자인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잠깐 꺼내볼까요? 권정생 선생님은 1937년에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출생해서 2007년에 돌아가셨어요. 일본과 한국에서 총 2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이 작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간절함으로 작품을 써 오셨다고 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하다가 고치기 힘든 병에 걸려 거지 생활을 하면서 일제 강점기 가난한 이들의 삶을 많이 접했기에 더욱 세심하게 체험적인 글들을 많이 써 공감과 감동을 주고 있지요. 권정생 선생님은 1978년부터 창비와 함께 책을 냈는데요. 『사과나무밭 달님』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바닷가 아이들』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어요. 권정생 문학의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창비: 개인적 의견으로는 권정생 선생님만의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표현들이 저를, 그리고 우리를 건드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과나무밭 달님』에 수록된 단편동화인 「해룡이」를 보면 해룡이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장가를 들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지내는데 문둥병에 걸려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 도망가요. 그리고 십 년 만에 몰래 와서는 아이들의 커져 버린 신발을 보며 울고 그간 모은 돈을 내려놓고 눈길을 되돌아가죠. 힘없고 나약한 한 사람의 절절한 사연과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잠잠히 이야기한다고 할까요? 눈물을 쏙 빼는 이야기를 쓰고 말겠어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예의, 그 인물 자체를 사랑하는 거죠.

아울러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온 삶 자체가 우리로서는 따라 하기 힘든 낮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 경험이 작품 속에 하나하나 묻어나오는 거죠. 삶과 문학이 일치한 분이었어요. 한평생을 병과 가난과 친구하며 살아오시면서 자연과 생명, 약해서 고난받는 이들을 보듬는 따스한 시선이 선생님의 모든 작품을 아우르고 있기에 많은 독자들이 그분의 작품을 찾고 또 찾는 거죠.

 

-사서: 창비에게 권정생은 무슨 의미일까요?

 

-창비: 『몽실 언니』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실 『몽실 언니』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이야기도 많이 되었던 터라 이번 북데이트 주제도서 선정 때는 굳이 피했는데요, 아무래도 창비아동문고 하면 『몽실 언니』를 뻬놓을 수 없고, 『몽실 언니』는 권정생 선생님의 대표작이기도 하니 창비에 있어 권정생 선생님은 창비아동문고와 같은 무게를 주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이건 비단 창비뿐만이 아니에요. 한국 현대아동문학에 있어 아주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영향을 미치는 작가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