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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로부터

흑조들의 반란, 그들은 누구인가?

흑조들의 반란, 그들은 누구인가?

 

9월 27일 12시 도서관에 까만 옷을 입고 썬글라스를 쓴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헐~누구지? 뭐 하는 거지? 그들은 3층에서 출발해서 자료실과 복도를 누비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이용자를 따라하고, 멀티미디어실 DVD 보는 학생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어린이실에서 책 보는 친구들 옆에서 뭔가 신호를 보낸다. 문헌정보실에서 책 보는 이용자 옆에 나란히 앉거나, 서가 사이에서 책을 뽑아 읽는 시늉을 한다.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유리창 너머로 엿보고 2층 난간에서 아래층 로비 이용자들에게 무언의 손짓을 해댄다. 알 듯 말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이들은 누구였을까? 대체 무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사진] 교하도서관 개관6주년 기념 행사 중 <흑조의 반란>. 도서관 사서들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사업 박현미 무용가와 파견예술인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펼쳤다. 박현미 무용가는 도서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즐거운 일터 : 춤바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은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오래된 전통처럼 우리나라 도서관 문화를 지배해왔다. 특히 개인 공부를 주된 목적으로 이용하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도서관 이용자들은 도서관에서의 소음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 도서관에서 그것도 자료실 안에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손짓발짓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도서관의 반란인가?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복도를 지나고 자료실을 누비면서 그들 뒤에는 이용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 따라하는 사람까지 줄을 이어 늘어지면서 도서관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교하도서관은 올해 예술인 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8명의 예술가와 함께 도서관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로 우리는 소란스런 도서관, 소음이 허용되는 도서관, 그리고 사서들과 이용자와 다른 방식의 만남~그런 것들을 상상하면서 이 날의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도서관 주변에서 행사를 하면 그 소음으로 인한 엄청난 민원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했다. 조용히 공부해야 하는 도서관에서 이 무슨 요란한 소리이냐고? 여전히 도서관은 너무도 조용해야 하는 곳임을 대원칙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 요란하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구두굽 소리..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온갖 소음에 대한 무차별적 거부반응은 현재까지도 많은 민원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런 도서관에서 감히 우리는 음악을 틀었다. 그것도 자료실에서..그리고 춤을 추었다. 그것도 사서들이 직접 춤을 췄다. 그동안 데스크에서.. 행사장에서...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공손하고 친절하게 이용자를 만나려 애썼던 사서들이 검은 썬글라스를 쓰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이용자들의 동선을 방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의 불문율을 깨고 싶었다. 깨뜨리면서 일어날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엄숙함이 좀 더 느슨해지고 편안해져서 좀 더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기를 바랐다. 경계와 규칙보다는 여유와 미소가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용자의 정보요구를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사서들이 직접 이용자 곁으로 가까이 가서 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고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보고 싶었고,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실천에 동의를 표현해 달라고, 맞장구를 쳐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무언의 의미들이 얼마만큼 이용자들에게 전달되었을까?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의 퍼포먼스는 아무런 민원도 제기되지 않은 채 끝났다. 도서관에서의 색다른 경험으로 그동안 우리 안에 잠재되었던 도서관에서의 엄숙함을 잠시나마 깨뜨려 볼 수 있는 즐거운 상상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기억을 남겼다. 매일 매일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도서관에서 이용자와 이용자, 이용자와 직원들의 경계를 낮추고 서로 끊임없이 말걸어 주고 맞장구쳐 주면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소음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곳..그런 도서관이 되고 싶어서 흑조들은 그 날 그런 반란을 시도했던 것이 아닐까?

 

 

2014. 10월 어느 날 9. 27일의 반란을 기억하면서_

교하도서관장 윤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