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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칼럼

생생한 놀이터 : 시습(時習)의 달인 공자

 

2014.10.20.

한의사 이혁재의 생생한 놀이터

시습(時習)의 달인 공자

 

 

신천함소아한의원 원장 이혁재

 

잘 아시다시피 논어의 첫 구절에는 자연스러운 삶에 덧붙여 인간이기에 또한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1)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는 데서 얻는 기쁨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2) 멀리서 온 벗과 만나는 즐거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3)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이지요. 공자는 세 가지 행복 중에서도 으뜸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는 것”(學而時習)이라고 합니다.

 

 

   

 

<그림 좌> 논어 / 공자 저. 김원중 역. 글항아리 (2012) (교하도서관 청구기호 : 148.3 공자 _ 문헌정보실 1층)

<그림 우> 공자. (출처: 위키피디아. 중국 당나라의 화가 오도자가 그린 초상)

 

시습(時習)은 ‘때때로 익힌다’라고들 합니다. 이렇게만 알고 있게 되면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되지요. 좀 게으르고 싶은 사람들은 “음, 내내 하지 않고 가끔하면 된다는 뜻이군”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욕심이나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음, 틈이 보일 때면 언제나 익히라는 말이군”이라고 해석하지요. 하지만, 시습(時習)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속을 거부한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는 아예 평생 달고 사는 이름이 바로 ‘시습(時習)’이었을 정도니까요.

‘시습(時習)’은 ‘때에 어긋나지 않게 제 할 일을 다 하라’는 뜻이 깔려 있습니다. ‘배움’(學)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바로 ‘때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숨 쉴 때, 잘 때, 먹을 때, 쌀 때처럼 생존과 직접 관련된 배움은 더군다나 때를 가리게 되지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일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해야 합니다. 나아가 희로애락의 감정도 적절한 높낮이가 필요하겠지요. 때를 알아야 때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사심이나 게으름 없이 생존과 감각과 감정이 때에 맞게 중심을 잡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습(時習)’은 ‘불습(不習)’이나 ‘상습(常習)’과 구분되야 합니다. '불습(不習)’은 말 그대로 익히지 않는 것인데, ‘몸에 배야 할 습관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상습(常習)’은 ‘마음에서 빼야 할 습관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것’입니다. 배야 할 것을 몸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나, 빼야 할 것을 마음이 가슴으로 안고 있는 것이나,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바로 여기서 병이 생긴다고 봐도 틀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조금만 더 나아가볼까요? 먼저 ‘상습’은 대체로 사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몸의 수고로움을 고려하지 않고 혹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습’ 역시 게으름을 즐기기 위하여 바른 마음을 써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흔히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여러 의존증들이 모두 이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단 것만 먹고 싶은 식탐, 게임만 하면서 놀고 싶은 유혹, 운동하라는 잔소리는 듣는 둥 마는 중하는 태도, 과도한 음주나 흡연! 어린이나 어른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모두 과도한 몰입과 심한 무관심에 덮여 ‘시습(時習)’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