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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칼럼

생생한 놀이터 : 여유(與猶)로운 외줄타기 놀이의 주인공 다산 정약용

 

 

 

 

2014.09.16.

한의사 이혁재의 생생한 놀이터

여유(與猶)로운 외줄타기 놀이의 주인공 다산 정약용

 

 

 

신천함소아한의원 원장 이혁재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은 늘 걱정거리입니다. 짚신장수와 우산장수가 있으면 늘 걱정되는 자식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아마도 인생에는 예측하지 못한 아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부모 입장으로 보자면 오늘 소개하는 이분을 자식으로 두었을 때 심정은 어떨까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극과 극으로 살았던 사람, 바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입니다.

 

 

<이미지출처 (좌) 다산 정약용 초상. 작자 미상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 (우) 강진 정약용 유적 / 문화재청 >

 

《매천야록》에 소개된 천재소년 정약용

다산(茶山)은 기억력이 뛰어나서 세인들은 계곡(溪谷) 장유(張維)[각주:1]에 견주었다. 어는 날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 대감이 영평(永平)[각주:2]에서 대궐로 오다가 길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책을 한 짐 지고 북한산의 절로 가고 있었다. 열흘쯤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그 소년을 만났는데, 또 책을 한 짐 지고 오고 있었다. 강산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자네는 뉘기에 책도 읽지 않으면서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가?”

소년이 대답했다.

“이미 다 읽었습니다.”

강산이 놀라서 물었다.

“지고 있는 책이 무엇인가?”

“《강목(綱目)[각주:3]》입니다.”

“《강목》을 어찌 열흘 만에 다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외울 수도 있습니다.”

강산이 곧 수레를 멈추고 책 하나를 뽑아서 시험했더니 돌아서서 잘 외었다. 이 소년이 바로 다산이었다. [각주:4]

 

여유(與猶)로운 삶

다산 정약용은 1762년 진주목사 정재원의 아들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납니다. 실학자였던 이익의 학문을 계승하고, 이벽을 통해 천주교를 접하기도 하는 등 학문적인 관심에 한계를 두지 않았지요. 1789년(정조 13년) 문과에 합격한 이후에는 행정 실무와 학문적 소양이 뛰어나 정조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주변의 질투와 시샘도 극단적이었지요. 정조가 살아 있을 때 받은 극찬만큼이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극단적으로 외롭고 힘든 ‘왕따의 삶’이 찾아옵니다.

 

그에게 다가온 남은 36년은 번지점프를 하듯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1801년 시작한 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1918년까지 18년간 이어집니다. 1818년 이태순의 상소로 고향인 경기도 광주 마현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이 힘든시절 내내 다산이 삶의 가르침으로 삼은 말이 바로 ‘여유(與猶)’입니다. ‘여유(與猶)’는 ‘예유(豫猶)’라고도 하는데, 노자의 《도덕경》에서 유래한 말이지요.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듯한 ‘머뭇거림’(與)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한 ‘조심스러움’(猶)을 간직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산이 살던 집에 붙인 이름이라 ‘여유당(與猶堂)’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반적인 분야의 평생 학문을 정리한 전집이 바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이기도 하지요. 그의 인생살이가 어떠했는지 묻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 이름! 바로 ‘여유(與猶)’입니다.

 

삶 속의 삶, 죽음 속의 삶 : 《주역사전(周易四箋)》과 《상례사전(喪禮四箋)》

다산의 저서 중 《주역사전(周易四箋)》과 《상례사전(喪禮四箋)》이 있습니다. 주역과 상례에 대해 주석을 달아 놓은 책이지요. 주역이 무엇입니까? 바로 생생한 삶이 주제인 책입니다. 상례가 무엇인가요? 바로 죽은 자와 산자가 주제인 책입니다. 다산은 자신이 저술한 책 중에서 《주역사전(周易四箋)》과 《상례사전(喪禮四箋)》만이라도 전승해간다면, 나머지 책은 그냥 없애버려도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각주:5] 다산선생이 여유(與猶)롭게 삶과 죽음의 극단에서 얼마나 진솔하게 외줄타기 놀이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주역사전(周易四箋)》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 생생한 주인공으로 살고자 했던 애절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네요. 한 번 더 물어볼까요? 혹시 여러분께서 다산과 같은 자식의 부모라면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이실지...

 

“《주역사전(周易四箋)》은 그야말로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문자이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통할 수 있거나, 사람의 지혜나 생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책에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여 그 속에 담긴 오묘한 이치를 모두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나의 자손이나 친구가 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이 천 년에 한 번 나오더라도 배 이상 정을 쏟아 애지중지 할 것이다[각주:6].”

 

 


역주 주역사전. 1

저자
정약용 지음
출판사
소명출판 | 2007-08-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周易四箋) 무진본(戊辰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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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저자
황현 지음
출판사
서해문집 | 2006-10-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이 책은 서해문집의 우리 고전 시리즈인 '오래된 책방'의 열두 ...
가격비교

 

 

 

 

  1. 장유 1587(선조 20년)~1638(인조 16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김장생의 문인이다. 천문, 지리, 의술, 병술 등 각종 학문에 두루 능통했으며, 서화와 문장에도 뛰어나 이정구, 신흠, 이식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로 불렀다. [본문으로]
  2. 지금의 경기도 포천군에 속한 고을로, 이서구의 집이 여기에 있다. [본문으로]
  3. 송나라 때 주자가 지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말한다. 이것은 사마광이 이백구십사 권으로 지은 편년체 역사책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요목만 뽑아 59권으로 만든 것이다. [본문으로]
  4. 《매천야록》(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62쪽 [본문으로]
  5. 《역주 주역사전》 (다산 정약용 저, 방인 장정욱 역, 소명출판) 7쪽 역자서문 중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역주 주역사전》 (다산 정약용 저, 방인 장정욱 역, 소명출판) 7쪽 역자서문 중에서 재인용 [본문으로]